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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뿔외2편 / 변희수

시치 2013. 9. 23. 23:02

 

제5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뿔 / 변희수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서면 늘 바람이 거세다

조금만 불어도 윙윙, 사나운 소리를 낸다

공기의 흐름을 막아놓아서라고 했다

바람이 뿔났다, 사실

막힌 곳이 많은 우리 집에도 여러 마리 뿔이 산다

공기의 흐름이 심상찮은 날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그런 날엔 뿔을 함부로 세우는 바람에

잠시 격리될 뻔 한 뿔도, 제 뿔에 제가 걸려 넘어진 뿔도 있다

막힌 곳이 제일 많을 것 같은 아빠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모자 속에 뿔을 숨겨 두었다가

상한 줄도 모르고 꺼낸 적이 있다 꼭 중국산 가짜 같았다

뿔 중에서 가장 약발이 센 뿔은 단연 엄마의 뿔이다

엄마는 알래스카 순록처럼 우아하게

뿔을 장식하고 다니지만 한 번 찔리면 오래 간다

TV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뿔 갈이 하는 순록들을 보았다

순록들은 바위나 나무에 뿔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벅벅 문지르고 나서야 새로 태어난 것처럼 온순해졌다

통증의 깊이로 까맣게 익어가는 순록들의 눈망울을 보면

아니, 서로 엉덩이에 난 뿔을 뽑아주려다가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 집 뿔들을 보면 후시딘 같은 거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끝없는 설원을 헤매다가 온 것 같은 밤이면

아무리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잠들어도 뿔 근처가 욱신거린다

우연히 한 우리에 갇히게 된 짐승들처럼  

뿔과 뿔이 엉키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막다른 곳에 서면 예민해지는 우리 집 뿔들

툰드라의 이끼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바람의 출구를 살핀다

쓰자마자 벗어야하는 순록들의 아름다운 冠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 웃자란 내 뿔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뿔 대신 쫑긋해진 두 귀,

온순하게 한 철을 보낼 작정이다

 

 

 

 

  거품의 향기

 

 

삼백 원짜리 믹스커피를 마신다. 커피 위에 뜬 거품을 보고 있으면 좌충우돌 흔들린 소용돌이 속, 길이 보인다. 어떤 이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위해서 거품을 걷어낸다지만, 깊이보다 나는 언제나 자욱한 거품에 더 마음이 끌린다. 쓰고 떫고 달고…… 보글대다 옹골찬 제 몸속의 것을 뱉어내는 것인지 속이 속을 비우고 부풀어 오르는 아득한 거품 속 공간들. 들끓는 비등점 혹은 어떤 생의 파노라마가 나를 그곳까지 안내해 줄 수 있을까. 쓴맛이 단맛을 끌어안고 단맛이 쓴맛을 끌어안고 순하게 궁굴려 놓은 저 절정의 집. 시시비비 격랑의 순간 다 지나왔어도 저마다 단정지울 수 없는 깊이가 있는 것처럼 쉬이 사라져버린다 해서 거품의 가벼움을 이야기 할 순 없겠다 식어가는 오후, 한 스푼의 졸음과 권태를 휘휘 저어 블랙홀 같은 삶을 뜨겁게 마신다. 몇 모금의 달콤한 각성,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말겠지만 입술과 입술 사이 밀어의 잔영처럼 둥글고 순하게 묻어오는 거품의 향기. 후후 불어대고 싶다.

 

     * 이 하석 '깊이에 대하여' 패러디.

 

 

  

난독증을 앓다

 

 

햇살이 컹컹 울 것 같이 맑은 날이었다

희고 컴컴한 백지 같은 한낮이라고 생각했다

 

줄장미가 핀 담벼락을 바라보며 난독 증에 걸린 며칠이 흘러갔다

손톱 밑에서 따끔거리던 몇 줄이

쓰리고 아름다웠으나……

옮겨 적진 않았다

 

그것은, 금단의 구역 위로 함부로 목을 늘어뜨린 채 반란과 음모를 꿈꾸는 극단적인 빛깔이었다 치명적이라는 말이 전신에 독처럼 퍼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혀를 뚫고 나오지는 않았다

 

저절로 시들어갈 때까지 발설할 수 없는 음모에

가담할 수 있을까

충혈 된 눈동자로 홀린 듯이, 창을 열어보면 수상하게 흔들리는 이파리들이 있고 뾰족한 가시들이 숨어 있었다

 

또박또박 읽히지 않는 생의 환멸을 엎지를 것처럼 고양이가 앙칼진 교성을 지르며 핏빛 담장을 넘었다 두 개의 눈동자로 훅- 옮겨 붙는

불의 꽃, 데인 듯이 붉고 뜨겁고 울컥거리는

지독한 생의 화염!

나만,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이마를 찌푸린 바람이 담장 위의 꽃들을 뒤적거릴 때마다

벌겋게 달아오른 생각들이 파지처럼 툭툭 떨어졌다

 

 

 

 

 

제5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도요와 영산댁 / 박산하 

 

 

제 몸피의 반을 버려 삼만 리를 난다는 새

삶의 반을 물속에서 살지만 물갈퀴를 키우지 않는 겸손은

멀리, 높이 날기 위한 것

칠게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부리는 더욱 길어야만 했고

길어진 만큼 휘어졌으니

말랑말랑한 땅 농사가 얼마나 질척대는지

늪에 발을 담가본 사람은 안다

갯벌은 어찌 그리도 집이 많은가

그 집들의 문이 열리는 때를 도요만이 아는 건 아니다

영산댁, 뻘배 미끄럼 타지 않으니 허릴 굽힐 일 없지만

아슴히 멀어지는 바다만큼이나 사라지는 도요의 날갯짓을 맥 놓고 본다

그녀, 허리를 펼 때면

서너 발 발치에서 현란한 부리로 농락하던 새

그래, 도요가 갯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긴 다리 한 번 더 꺾기 때문,

갯바람이 뺨을 후려쳐도 온순해져야만 한다

만경의 끝 심포, 맘껏 부리지 못한 그 바다 저리 섬들을 키우더니

이제 제 입을 막고 그녀의 입마저 막는구나

두세 평 블록 방 양철지붕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새들어오고

진수치 못한 목선은 날마다 가벼워지는데

소주잔 들린 그녀의 손, 마치 사포 같구나

하지만 심포, 생합의 명성이 시들해지는 강둑에 도로가 나고

갯벌공원 또한 생기면 좋아질 거라며,

막내가 첫 월급으로 끼워준 누런 금니를 반 이상 드러내며 희죽 웃는다  

 

 

 

 까치밥

 -일백오십의 나이테를 풀다  

 

                                                 

  1

   민란 온다는 말에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 몇 날 지나 녹두 한 알 꼬투리에서 튀어 나왔다 황토재 우금치서 돌아서야만 했던 봉두난발 속 그 살아있던 눈, 벌떼처럼 일어났다 그해 제 치레하기 바빠 까치밥도 남기지 못하던 때, 나무는 실금같은 흔적 나이테로 남겼다

 

   오일장에서 만세를 불렀다 아우내장터서 불어온 바람은 달빛아래 그림자, 그 그림자로 마을에다 소식을 실어주었다 忠을 다한 그의 집, 사람 죽고 집이 산 것인가

 남쪽 암태섬에서 팔 할의 품삯을 사 할로 내린 죽기직전의 섬사람들의 저항방식, 밟히고 밟혀도 더는 섬에서 유폐되고 싶지 않았다 나무도 만세를 부르노라 팔을  휘저었다 일백의 나이테 그렇게 누웠다 일어났다 가늘고도 연한 사람들의 일기를 대신 썼다

 

   하현달이 떠오를 쯤 서성거리던 발자국의 비밀을, 밀주단속에 허둥대던 아낙의 얼굴을, 청솔가지 한 지게로 아궁이를 데우던 매캐한 연기를 순하게 바라보던 나무.

 빛고을에 소란이 일고 주먹밥에 체루가스가 고명으로 내려앉을 때 한입 문 홍시에도 간난艱難의 냄새가 풍겼다

 

  2

   마을 흙담벽에 붉은 글 써졌다 포클레인 기사는 웅웅 공회전을 할 뿐 나아가지 못한다  소장 김씨 어디엔가 전화를 한다 코앞의 포클레인 기사 전화를 받더니 레버를 넣는다

   집 무너지고  먼지 자욱한 마당에 그 아이의 증손 나타난다 포클레인 삽날에 맥없이 쓰러지는 감나무 우듬지 끄트머리 홍시하나 질질 끌려와 덤불속으로 눕는다 지상에 내려온 홍시, 일백오십의 나이테는 일그러지고

 

   아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이 나무와 함께 했다 홍시는 한 끼 밥이었다 행여 해거리를 하면 그해 농사 또한 흉작이었으며 나이테도 생기다 말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 껍질 벗겨지는 송정, 마을 역사서인 나무도 몸을 내준다 논밭은 아파트촌이 될 터, 고샅길은 우레탄길 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생황토살 아래 돋아나는 서릿발 되어 식어간다 녹두 한 알 꽃피고 열매 맺길 기백, 싸늘한 철탑에 보금 튼 저 녹두, 이제 무슨 노래 불러야 하나

                                                 

 

 

지하철

                                                 

 

  더듬이로 제 갈길 가는 개미, 허리 휘도록 짐 진 개미, 지상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꼬물거리며 길을 낸다 수서행 짐칸이 바람을 몰고 와 선다 바람에 실려 우루루 쏟아지는 개미들, 빈자리는 이내 물같이 채워진다 쇠냄새 날리며 가늘어져 가는 꼬리하나 보내고 인천행 차를 기다린다 시청행인지 인천행인지 확인하는 삼분, 삼분이 서울에 잠입하는 시간 오 분 후면 어디서 왔는지 구분이 모호하다 대개 시골개미는 손으로 역을 하나하나 지워간다 도시개미는 한입 먹다만 사과를 들고 그 속에 들어가 안주한다

  공손히 받든 손 안의 세계, 옆자리는 먼 나라 먼 나라는 코앞. 꼬리에 꼬리를 문 고기들이 먹어라먹어라 아우성이다 넘쳐나는 식욕에 개미 목이 휘었다 아래로 향한 눈, 보이는 건 맞은편 신발, 신발을 보면 얼굴이 보인다 속이 보인다 신발과 얼굴을 훔쳐보다가 내 신발을 본다 여기까지 오느라 늘어진 신발, 발에 익은 신발일수록 누추하다 오그라드는 나의 발

  어쩌다 서울 가는 날, 빈자리는 그림의 떡, 그들의 순발력은 수 천 번 학습의 결과일 터 어둠 속에서 온 몸 더듬이가 자랐을 것이다 풍경이라곤 빼곡한 개미사이로 어두운 바람만 휙휙 지나는 터널, 또 터널 계단 그리고 계단 바람 불때마다 휘청하는 다리를 세워본다 아랫도리 힘이 들어가고 곤충눈알은 빈자리를 찾는다 자리가 나는 순간 물체가 날아가고 이내 동상처럼 앉은 개미들

  크게 보이던 서울이 작아진다 작아야 스민다 꾀바르지 않으면 날마다 지각이다 행렬을 이탈하면 개미는 이미 개미가 아닌 것 개미들이 움직이자 거대한 용줄이 된다 땅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개미가 거대한 서울을 밀어올린다  

 

 

 

제5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덤불설계도 / 정정례  

            

 

 가을덤불은 어둑한 그늘도 이사 간 빈 집이다

 찬바람만 들고 나는 곳

 햇살이 똬리를 틀던 뱀을 따라하고 있다

 푸른 부피가 다 빠진 덤불을 보면 봄과 여름이 이사 간 빈 집 같다

 흘리고 간 꽃잎 몇 장.

 빛바랜 잎사귀 몇 개 매달려있다

 

 뼈대만 앙상한 것 같지만 사실 줏대 없는 것들끼리 지탱할 수 있는 유용한 설계도다.

 그래서 봄에 꽃 필 때도 네 줄기 내 줄기 찾지 않는다.

 

 굳이 따지고 내려가면 꽃피는 계절이 훌쩍 떠난 뒤에 엉킨 줄기를 헤집고 확인할 필요가 없는 덤불. 잘 못 건드리면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것들. 가만히 두어도 제 자리를 지켜내는 질서가 정연하다

 

 휘어지고 얽힌 집에 남아있는 것은

 수북이 쌓인 흔적들

 이름을 찾기에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스스로 호명을 한다.

 색색이 문패를 단다.

 

 빈 줄기 같지만 그 중 하나 뚝 잡아 꺾으면 물기 가득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지금은 더 많은 양의 전류를 충전중이다

 잘 못 건드리면 줄기 곳곳에 날카로운 불꽃이 인다.

 꽃들이 피다 간 곳, 방전이다.

 

 

 

전각

 

이빨 가는 소리가 난다

강한 것 끼리 만나는 소리

그 소리가 돌에 길을 낸다

점 하나로 부터 시작되어 

골골이 흔적을 남기는 길

정해 놓은 길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나는 길

그 길 끝의 소리들이 만들어낸 들뜬 이빨로

부를 수 있는 이름 하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부스러기 끝에 남는 

표정뿐이다

푸른 돌, 잘 익은 돌에 이름 하나 안치면

끓는 소리도 없이 설설 익는다.

제 살을 깎아 만들어낸 각

부스러기들 떨어져나가고 희뿌연 먼지가루

다 날아가고 칼 지나간 곳을

비로소 이름으로 쓴다

바닥을 딛고서야 드러나는

가장 밑 부분의 수결

반대의 획으로 찍히는 이름은

음과 양이 마주한다.

붉은 색깔을 옷으로 입는 것은 

이름에도 뜨겁게 뛰는

붉은 심장이 있기 때문이다

 

 

   썰물의 무게

 

 저녁을 묻히고 어둠의 포구로 밀려오는 밀물

 묶여 있던 배들의 바닥에 부력이 달라붙고 있다.

 이 진창에도 길이 있다는 듯

 물보다 먼저 아낙들이 널배를 타고 돌아온다.

 늘 저 시퍼런 물에 쫒기며 살았던 사람들

 머리에 얹힌 수건을 풀듯

 수평선 끝으로 붉은 해가 빠진다.

 

 저녁때의 모든 잠식은 소리가 없다

 움직이는 것들의 발길엔 다 제 거처가 있겠지만  

 저 물 속으로 집을 삼은 것들이 있어

 오늘 저 물살이 유독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

 

 미끄러운 길이었고 구불거리는 길이었다.

 

 연체동물같이 밀려드는 썰물

 입 꽉 다문 어패류를 싣고

 저기 물질 나갔던 썰물이 밀물로 돌아오고 있다

 뻘 속에 껌벅거리는 빛들의 피로가

 허리춤 천근 무게로 묶여 가라앉고 있다

 저 탁류로 배들이 문을 열고 출항을 하고

 조개들이 입을 열고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내뱉고 있다.

 

 뒤 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평한 시간들

 갯펄에 붙들린 젊음은 빠르고 미끄러웠다.

 아낙들이 망태를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의 절반을 넘은 어느 지점에서 썰물이 바르르 떤다.

 붉은 노을은

 그 사이 어둠을 건너가고 있다

 

 

 

 

제5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인간의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정신을 내포하고 있어야

 

 

예심을 거쳐 본심의 대상이 된 작품은 23명의 150여편이었습니다. 다양해진 현대시의 화원을 보는 듯 자연, 가족, 역사, 일상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개성적인 몸짓을 접할 수 있어 심사위원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5회째를 맞은 천강문학상의 위상에 걸맞게 상당한 수준의 시편들이 응모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들이 감각적 표현을 통한 이미지 조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주제의식이 전반적으로 미약했습니다. 시적 표현이 묘사로만 집중되어 있어, 시의 정교성은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라는 형식의 그릇은 만들어져서는 곤란합니다. 그 그릇 속에 알찬 내용물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시편들이 담겨져야 할 내용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시적 대상을 자기화해서 육화하는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로 보입니다. 이런 경향이 현재 우리 시단의 한 경향이란 점에서 특별한 현상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우리시가 언어적 기교만으로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이런 우리 시의 한 경향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응모대상이 된 시편들을 두고 이러한 시적 관점을 취한 이유는 천강문학상이 지향하는 바가 시를 위한 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정신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시에서 필요한 개성적 이미지의 형상화도 필요조건이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가 선명한 감동적인 시에 더 점수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진 대상은 「원앙무덤」,「디지털 호미」,「도요와 영산댁」,「덤불 설계도」,「뿔」 등이었습니다.

 

「원앙무덤」은 시적 발상은 살만했지만, 하나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약했습니다.「디지털 호미」역시 그 발상이나 아날로그 호미를 디지털 호미로 전환시켜나가는 이미지 전개가 재미나는 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언어적 재미가 남기는 주제의식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편을 두고, 오랜 논의를 했습니다. 나머지 세편의 시를 응모한 세 사람의 시편들이 앞선 두 사람보다는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요와 영산댁」은 주제의식은 상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시의 진술이 약간은 직설적이고, 연 구분을 하지 않고 있어 무거운 주제를 한 호흡으로 급박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시적 리듬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는 산문이 아니라 노래라는 사실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두 편이 「덤불 설계도」와「뿔」이었습니다.「덤불 설계도」는 시에서 중요한 언어미학이 제대로 구축되어져 있는 깔끔한 시편이었습니다. 시의 완성도라는 점에서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성을 내보이고 있는 시편입니다. 감각적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이미지화하고 있는 솜씨는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완벽하게 완성된 「덤불 설계도」를 통해 독자에게 건네는 감동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는 언어미학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뿔」은 작품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요설에 가까운 시적 서술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미가 있고, 인생 삶의 문제를 일상의 소재를 통해 쉬우면서도 의미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풀어내는 시적 추진력이 남달라 시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뿔」을 대상으로, 「덤불 설계도」와 「도요와 영산댁」을 각각 우수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수상자들에게 박수와 함께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정진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깝게 수상하지 못한 분들도 부단한 탁마를 통해 입선의 기회를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하늘이 내린 깨끗하고 의미있는 <천문학상>이 일취월장하여 한국문단에서 가장 의로운 문학상으로 발전되어가길 기대합니다.

 

       심사위원 : 감태준(시인), 남송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