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고드름—물의 체위, 교양 없이 뜨거운/김륭
시치
2013. 8. 1. 23:00
고드름—물의 체위, 교양 없이 뜨거운/김륭
사내는 제 그림자를 여자의 몸속에 쑤셔 박기 위해
여자는 제 그림자를 사내의 몸속에 말아 넣기 위해
쥐구멍 없는 시궁쥐가 되거나 바오밥나무 위의 원숭이가 되거나
경계하라, 입에서 쏟아진 빛이 항문을 열고
죽음을 발굴할 때까지 부디 음각하라,
神을 등쳐먹기 좋은 자세로
사내가 줍는다 두루마리휴지 하나 여자에게 건네거나
여자가 줍는다 두루마리휴지 하나 사내에게 건네거나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시뻘겋게 얼굴을 끙끙대는
어린 왕자의 체위와 늙은 마녀의 비의가 비비
꼬인 다리를 말아 올릴 때까지
물을 받는 입이 되거나 쓰레기를 비우는 배가 되거나
훌쩍 뒤집어진 비닐우산보다 교양 없는
그림자를 접었다, 폈다
음식물쓰레기를 비우러 갈 때마다 뒤가 켕기듯
죽어서도 갈 데가 없는 노래가 있다
사랑해 죽도록, 활활 불타는 서로의 입에서
몸이 뚝, 부러져 있다
—《문학. 선》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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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2007년 〈문화일보〉신춘문예 시, 〈강원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동시집『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