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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세계의 문학》신인상 당선작_ 강지혜, 최지인

시치 2013. 6. 24. 22:44

제7회 《세계의 문학》신인상 당선작_ 강지혜, 최지인

                                        심사위원 : 이원, 서동욱, 김행숙

       

기적/강지혜

 

 

 

유리 부는 사나이가

대롱에 숨을 밀어 넣었다

행성처럼 부푸는

 

이윽고 사내가

숨을 들이마시자

따뜻한 유리물이

식도를 타고

 

흘러갔다

 

폐와 혈관에 맺히는 성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쥐 떼

 

들이쉬면 들이쉴수록

사내의 볼을 뚫고

 

유리 가락이 흘러나왔다

음악처럼

고양이 수염처럼

 

외부인의 그림자가 스치는 공방의 밤

 

종종 떠나지 않고

 

내부가 유리로 된

사내들이

조심조심 가마 옆으로 모인다

 

기적처럼 해가 뜰 거야

 

스노볼을 부풀려 줄게

 

박제된 기관지로

 

그리고 키스를 나누는 몇 사람

 

신장이나 고환에서

교회와 해변이

태어나고

 

벌려진 입술 사이로

떠도는

따옴표들

 

미로를 얻은 사내들이

소리를 듣는다

 

어디에도 간 적 없는

 

어디로도 온 적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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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래 선언문/최지인

 

 

   손과 죽음을 사슬이라 부르자. 그들이 손가락을 걸고 있는 모습을 엉켜 있는 오브제라 부르자. 그들은 손가락을 쥐고 엄지와 엄지를 마주한다. 구부러진 몸이 손을 향해 있다. 손이 죽음을 외면하는 것을 흔적이라 부르자. 빠져나갈 수 없는 악력이 그들 사이에 작용한다. 손이 검지와 중지 사이 담배를 끼우고 죽음은 불을 붙인다. 타오르는 숨김이 병원 로고에 닿을 때 그들의 왼쪽 가슴은 기울어진다.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주자. 손이 기둥을 잡음으로써 손은 기둥이 되고 그것을 선(善)이라 부르자. 죽음이 선의 형상을 본뜰 때, 다리를 반대로 꼬아야 할 때, 무너질 수 있는 기회라 부르자. 사라진 손을, 더듬는 선을, 부드러운 사슬을, 죽음이라 부르자. 그들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담뱃재를 털자. 흩어짐에 대해 경의를 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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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 경위

 

   올해로 벌써 7회째를 맞이한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 시 부문에는 230명의 응모자가 2608편의 작품을, 소설 부문에는 290명의 응모자가 663편의 작품을, 평론 부문에는 7명의 응모자가 14편의 작품을 투고하였다. 가득 쌓인 응모작들은 침체된 문단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 줄 대형 신인의 출현에 대한 간절한 기대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모든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한 편 한 편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매우 면밀하게 심사에 임했다. 심사 진행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예심과 본심위원의 특별한 구분 없이, 심사위원들의 1차 독회를 거쳐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을 다시 교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응모 편수가 적은 평론 부문은 바로 본심으로 넘겼다. 본심은 2월 6일과 7일 양일에 걸쳐 민음사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시 부문 심사는 이원 시인과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서동욱 교수, 시인인 김행숙 교수가 맡아 주었으며, 소설 부문은 편혜영 소설가와 문학평론가인 정영훈 교수, 강유정, 백지은, 강지희 제씨가, 그리고 평론 부문은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들이 각각 심사를 맡았다.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과 같다.

 

시 부문

  • 강지혜_ 「기적」 외 9편
  • 김다연_ 「닥」 외 9편
  • 김재효_ 「말을 하는 밤」 외 12편
  • 이현정_ 「인디오의 연인들」 외 9편
  • 장보미_ 「가죽의 깊이」 외 9편
  • 정선율_ 「풀숲에 깜박 두고 온 제 기타를 가져다주시겠어요?」외 9편
  • 정지돈_ 「필라델피아」 외 9편
  • 최지인_ 「돌고래 선언문」 외 9편
  • 하경준_ 「칼은 얼굴을 건넌 귀를 자른다」 외 9편
  • 한유다_ 「열대성 장미」 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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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 소감 ]

 

강지혜│기적 외 7편

 

강지혜2

 

   시 쓰는 일은 힘이 듭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의 힘에 매료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힘이 됐을 줄은 몰랐습니다. 힘을 나눠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름다운 아빠, 엄마, 경구. 시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상현. 심재휘 선생님, 이영주 선생님, 시를 만나고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셔서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고개를 들고 조금 더 걸을 수 있게 해 주신 김행숙 선생님, 이원 선생님, 서동욱 선생님, 고맙습니다. 대진대 문창과 선후배들, 힘을 가진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 꿈을 향해 간다며 대단하다 말해 주는 친구들, 이 비루한 시대에서 우리 힘을 잃지 말자. 그토록 바라던 일이 생겼는데 저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 내야 하나, 다시 힘이 듭니다.

 

   ……

 

   이것이군요. 시의 힘이란. 두려움을 짓밟는 언어의 능력. 그 힘을 갖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겠습니다.

 

 

최지인│ 돌고래 선언문 외 7편

 

최지인2

 

   왼쪽 가슴에 종양 두 개가 자라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항생제를 삼킵니다. 그의 종양은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코피를 자주 쏟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시를 읽습니다. 그것들이 어떤 의미로서 발화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견해를 갖고 주체적인 태도를 지니기 위해 사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보이는 것뿐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언어는 어떠한 것도 구축할 수 없습니다. 쉽게 붕괴되고 맙니다. 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두렵습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어딘가에 몸을 눕힐 것입니다. 저는 거짓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싸우고 있습니다.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겠습니다. 단단한 언어로 세계를 어루만지겠습니다.

   좋지 않은 글을 읽는 것은 곤혹임이 틀림없습니다. 김근 선생님,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책으로 둘러싸인 연구실. 어머니처럼 돌봐 주신 이경수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밥상도 없이 맨바닥에서 하얀 밥과 깻잎 절임을 허겁지겁 먹었지요. 밥 한 숟가락 말없이 제 밥그릇에 옮겨 주었던 보영. 8인 병실에 누워 오른손을 감싸고 있었던 성규. 부치지 못한 편지가 일기장 한쪽에 끼워져 있습니다.

 

   ‘난장’ 식구들, 현진, 이영주 선생님, 조동범 선생님, 이윤학 선생님, 윤한로 선생님, 홍우계 선생님, 오형엽 선생님, 중앙대 많은 선생님, 안양예고 선후배 동기, 대신 야학 교사와 학생들, 신촌 모임……. 감사의 마음을 전할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하나하나 이름을 적지 못해 죄송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 정지은, 최재석.

   부족한 제 작품을 뽑아 주신 서동욱 선생님, 김행숙 선생님, 이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세계의 문학》2013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