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폭설/위선환

시치 2012. 12. 24. 18:07

 

폭설/위선환 

 

몸속에 가시뼈를 키우는 물고기가 자라나는 가시뼈에 속살이 찔리는 첫째 풍경 속에서는  

몸속에 두 귀를 묻어버린 물고기의 몸속보다 깊은 적막을, 적막하므로 무한한 그 깊이를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눈 뜨고 처음 내다본 앞바다에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둘째 풍경 속에서는  

야윈 손이 반음씩 낮은 음을 짚어가는 저녁 무렵에 어둑하게 어스름이 깔리는 音調를  

새들은 어둔 하늘로 날고 살 속에서는 신열을 앓는 뼈가 사뭇 떠는 오한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잠깐씩 돌아다본 들판에 돌아다볼 때마다 눈발이 굵어지는 셋째 풍경 속에서는  

눈꺼풀에 점점이 점 찍힌 점무늬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반점들의 하염없는 나부낌을

아득하게 깊어진 눈구멍 속에서 속날개를 털며 자잘하게 날갯짓도 하는 설렘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물굽이와 들판과 나를 덮고 묻는 눈발이 자욱하게 쏟아지는 마지막 풍경 속에서는  

천 마리씩 떨어지는 여러 무리 새떼들이 바짝 마른 가슴팍을 땅바닥에 부딪치며 몸 부수는 저것이  

폭설인 것을  

내리 꽂고 혹은 치솟는 만 마리 물고기들은 물고기들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것 또한

폭설인 것을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았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누구인가 그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