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라훌라/최해경(2005,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치
2012. 11. 6. 00:45
라훌라/최해경(2005, 영남일보 신춘문예)
-길 모퉁이에서
누군가를 부르며
부르트며 바람이 거리를 휘감는다
어둔 밤 얼룩처럼 드문드문 가로등이 번지고
막차를 기다리는 내 등뒤에서
멀어져라 뒤돌아보지 마라
바람은 쉰 목소리로 다그치듯 나를 자꾸 떠민다
그는 저 만치서 나를 향해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
자울대다 눈을 거푸 치켜 뜨는 길모퉁이 가게 불빛 사이로
밤은 더욱 자우룩해지고
여전히 그의 눈빛은 차게 떨리겠지
스무 살 적, 객지에 나를 처음 떨구고
곧 목놓아 울 듯 그렁그렁하던 그 눈빛이
내 가슴에 단단히 말뚝을 박고는
녹작지근한 해질녘이면 어지러이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
어미 소의 말간 눈망울에 들이치던 석양빛처럼
빛의 눈물 자국 다 떠메고
차마 못다 한 말 되새김질하듯
그리움도 순하게 견뎌야 한다는 것
오랜 후에야 그 눈의 얼룩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한여름 소낙비가 얼룩져 시린 겨울 강 핥는 여울이 되고
사랑은 얼룩져 돌이킬 수 없는 그러나
돌이킬 밖에 없는 괴물같이 눈부신 추억을 매달 듯
얼룩이 마냥 뼈아픈 얼룩만은 아니지
이제서야 나는 나를 다독여준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나의 짓무른 가슴의 얼룩, 아버지가
끝내 저기 서 있다
세상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