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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카페) 2005 신춘문예 시당선작 심사평

시치 2012. 11. 5. 23:46

2005 신춘문예 시당선작 심사평
-경향, 조선, 매일, 동아, 한국, 세계일보의 당선작에서 한 편을 뽑아보며


시를 보는 기준은 누구나 같지 않다. 그것은 사람의 취향이나 인식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를 지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는 시편들도 어떤 성격의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느냐, 어떤 경향의 신문에 투고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요행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객관적인 잣대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어느 시가 더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심사위원 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에도 아랑곳 않고 신춘문예에서 뽑히는 시들이 대개 일정한 경향성이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등단을 꿈꾸는 소위 문학청년들에게 있어서 당선의 영광을 거머쥘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신춘문예용 시의 공통적인 경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길어질 것 같아 대략 언급해보자면, 신춘문예 시든 아니든 좋은 시라면 단단하고 절제된 짜임새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그 모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라면 금상첨화겠다. 거기에다 마침표를 찍자면 결국엔 희망을 가지고 삶을 감싸안는 포즈의 사뭇 건전한 시들이 신춘문예용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김승혜의 '소백산엔 사과나무가 많다'라는 작품은 약간 의외성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앞으로 언급할 여섯 편의 신춘문예 당선작들 가운데 가장 서정시의 전통에 충실한 작품이다. 소백산의 사과나무들에게 절 한 채 들었다는 발상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들을 편종으로 보았기에 나올 수 있는 진술이다. 그 자체는 사뭇 상큼한 인식이기에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편종소리가 풍경소리로, 다시 운판소리로, 마지막엔 대종소리로 점차 발전해나가는 점층법을 사용하여 소백산맥 자락에 있는 절인 부석사의 안양루까지 은근슬쩍 견인해오고 있다. 날이 갈수록 특정 경향이 완고해져가는 신춘문예 작품에 있어서 기존의 스타일을 벗어난 시가 뽑혔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찜찜한 것은 별다른 의식도 없이 순순히 자연과 합일되는 이 구태의연성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떤 진지하고 치열한 내면적 고뇌 없이 깨달음을 무기로 한, 禪的인 냄새를 풍기는 시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시는 자연스럽게 추천작에서 제외되었다. 시적 구성에 있어서 너무 뻔한 형태이기도 하고 이정록과 같은 부류에 속한 몇몇 기성시인들의 아류작인 듯한 느낌을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너무 안전한 형식을 택함에 따라 시인의 개성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도 이 결정에 한 몫을 했다.

서영식의 '집시가 된 신밧드'는 낮동안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노숙자의 머릿수건에서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밧드가 덮어쓴 터번을 연상한 시이다. 이 시는 IMF 이후 급격하게 드러난 암울한 경제상황과 그로 인해 생겨난 집시처럼 유랑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노숙자 문제 등, 지금의 시대 현실이 당면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노숙자에게서 집시와 신밧드를 동시에 발견한 안목은 좋았지만 그것을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끌고 가는 힘은 부족해 보인다. 그의 초라하고 비루한 현재를 부각시키려면 그가 한때 넓고 푸르게 펼쳐진 과거의 바다를 항해했었다는 사실을 대비시키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신춘문예에 투고할 정도의 자신감이라면 안정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시 군데군데에서 어색한 비문들이 엿보이는데다가, 형식적인 행과 연갈이가 단조로워서 그런지 내재율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읽는 도중 호흡이 자꾸 끊어지는 감이랄까. 행과 연은 단순한 내용상의 구분이 아니라 읽히는 언어의 묘미까지 고려한 배치라는 점을 좀 더 생각했어야 하겠다.

이영옥의 '단단한 뼈'는 빈틈없는 언어가 조밀하게 짜여진 단단한 작품이다. 실종된 지 일년 만에 발견된 사내의 뼈에는 자살 직전의 고통과 허무함, 사회에 대한 냉소와 같은 복합다단한 감정들이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다. 전통적인 서정시에서처럼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동일시가 아닌, 일정한 거리감을 사이에 둔 객관적인 시선의 면밀한 관찰이 돋보이는 시이다. 시에서의 절제나 함축은 당연한 미덕이다. 그러나 대개 좋은 시라고 불리는 시편들이 그러하듯이 적절한 감춤과 드러남이 공존해야만 무릇 시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는 과도하게 말을 아끼고 감춤으로써 사내가 왜 자살해야만 했는지, 냉소의 대상이 누구인지, 혹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침묵이 과연 바람직한지와 같은 무수한 의문들을 양산하기만 한 채 어떠한 방향의 제시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점에서 많이 아쉽다. 게다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3인칭의 객관적인 외부적 관찰자의 시선으로 진술한 시는 이미 최금진 시인이 시도했던 방법이기에 이제 와서 참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증거들은 무뇌아처럼 웃었다'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이 시를 추천작에서 떨어트린 가장 큰 감점요인이다.

신기섭의 '나무도마'는 도마의 칼자국에서 상처의 코드를 읽어낸 시이다. 물론 시인이야 나름대로 새로운 인식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겠지만, 항상 칼날을 온 몸으로 받아주던 도마가 때로 칼날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참신한 인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진부한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시편들은 자칫하면 대상 그 자체에만 천착하게 만들어 머리 위의 큰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성을 가지게끔 만든다. 진정한 상처에 대한 공감은 상처라는 말을 수십 번 내뱉고 나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말 없이도 어떤 상황을 제시하여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칼끝과, 그것으로 인한 상처를 강조한 이 시는 한 마디로 엄살이 되고 말았다.

전면이 통유리로 된 윤석정의 '오페라 미용실'은 바깥에서 상연되는 한 편의 사실적인 오페라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야 마는 오페라를 구경하러 돌림노래처럼 몰려나오는 이웃들. 시인은 한 가정의 고통과 비극들이,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그저 타인들의 눈요깃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오페라 미용실'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 전편에서 오페라와 관련된 음악적 어휘를 사용하여 비유를 일관되게 끌어간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중복되는 어휘가 많은 데다가 장식적인 면에 치중하다보니 시가 가벼워지고 산만해 진 감이 없지 않다. 시어는 일상적인 언어의 한 변용에 다름 아니다. 비유와 상징이 남발된 화려하고 장식적인 어휘가 시의 기본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시든, 무엇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장도 중요하지만 그 포장이 내용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물을 압도해 버린다면 정작 상자를 열어본 이들은 허탈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윤진화의 '母女의 저녁식사'를 읽는다. 온통 풀 뿐인 저녁식사에서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말을, 말갈기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아마조네스들을, 가슴 한쪽으로 대변되는 그녀들의 삶에 대한 호전성을, 유방암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어머니를 넉넉히 소환해내는 시인의 상상력이 대단히 놀랍다. 자칫 지나친 비약에 그칠 뻔 했던 낱낱의 대상들이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를 긴밀한 연결고리로 삼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유방을 잃은 여자는 여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에 대해 회의하게 마련이다. 그만큼 유방이란 것은 여성의 한 상징물로 오래 존재해왔다. 시적화자는 일부러 한 쪽 가슴을 자르고 거침없는 삶을 살아갔던 아마조네스들을 끌어와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를 태연하게 위로한다. 두 모녀는 말없이 마주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속에는 차마 내뱉지 못한 울음덩이들이 뭉쳐있을 것이다. 히잉, 말울음소리는 내색않는 어머니의 속울음이자, 그것을 헤아리는 딸의 피끓는 울음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절절함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무도 손쉽고 평범한 언어로 뛰어나게 구사한 이 시가 여섯 편의 작품 중 가장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슬픔의바다)

 

 

출처 카페 : http://cafe.daum.net/seaplant / 슬픔의 바다

출처 : 신춘문예와 노트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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