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스크랩] 가족 (외 1편) / 강은교

시치 2012. 11. 5. 19:37

가족 (외 1편)

 

   강은교

 

 

 

그날 그 젊은 여자는 무덤 위에 걸터앉아 둥근 젖통을 꺼냈다.

푸른 심줄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둥근 그것.

지구의 같은 것

아기가 영롱한 종처럼 지구의에 매달렸다.

종추가 종벽에 부딪쳐

눈부시게 동그랗게 오물거렸다.

 

 

 

그 집

 

 

 

그 집은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신혼 시절 제일 처음 얻었던 언덕배기 집

빛을 찾아 우리는 기어오르곤 했어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는 두드렸어

그러면 문은 대답하곤 했지

삐꺽 삐꺽 삐꺽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빛이 거기서 솟아나고 있었어

싱크대 위엔 미처 씻어주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 있었지만

 

그 창문도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싸구려 커튼이 밤낮 출렁거리던 그 집

자기들이 얼마나 멀리 아랫동네를 바라보았는지를

그 자물쇠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단단히 사랑을 잠글 수 있었는가를

그 못자국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옷가지들을 거기 걸었었는지를

어느 날 못의 팔은 부러지고 말았었지

 

새벽은 천천히 오곤 했어

그러나 가장 따뜻한 등불을 들고

그대를 기다리곤 하던 그 나무계단을 잊을 순 없어

가장 깊이 숨어 빛을 뿜던 그 어둠을 잊을 순 없어

 

아, 그 벽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저녁이면 기대앉아 커피를 들던

그 따스한 벽

순간도 영원인 환상의 거미 날아오르던 곳

자기가 얼마나 튼튼했는지를

사랑의 잠 같았는지를

 

 

 

                       —시집 『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

 

-------------

강은교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사상계》로 등단. 시집 『허무집』『오늘도 너를 기다린다』『벽 속의 편지』『초록거미의 사랑』외 다수.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