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방을 닦다/문성해
시치
2012. 10. 21. 21:18
방을 닦다
문성해
이른 아침 방을 닦네
길게 자루 달린 걸레는 말고
오래된 수건을 적셔 방을 닦네
이처럼 오래 자신을 쓸고 비워낸 자가 또 있을까
이것은 십 년 전 이사 때 난 상채기
대체 이 얼룩은 어디서 날아든 거지?
밤새 등이 눕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내가 누운 나를 들여다보듯 방을 닦으면
방바닥이 거대한 거울 같네
거울의 구석구석도 이리 자주야 닦진 않지만
이 방을 닦을 땐 무릎을 꿇어야지
갸웃거리는 풀과
간지러운 모래들 대신
묵직한 방구들과
습진 가득 찬 내 등을 얹게 된
이 지구를 닦을 땐 무릎을 꿇어야지
무릎을 꿇고
방을 닦아본 사람은 아네
구부린 눈과 구부린 심장 속에도
방이 있다는 것을
그 방들이 홀연 닦여지고 있다는 것을
고즈넉한 이 방들 속으로
바람이 흘러와 책장을 넘기네
나비가 사뿐 경대 위에 앉네
—《詩로 여는 세상》 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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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 1963년 문경 출생.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자라』『아주 친근한 소용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