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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그리고 바다 끝에서부터 물이 들어온다/이 원
시치
2012. 1. 25. 20:08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그리고 바다 끝에서부터 물이 들어온다/이 원
팔월과 시월 사이 사과가 익는다 접시 위에 칼을 놓는다
창에 얼굴이 반만 나타난다
바다와 나란히 비행기가 지나간다
허공은 목구멍을 사과 속에 벗어 두고 나온다
유방들의 둘레가 헐렁해진다 팔월과 시월 사이 사과가 익어 가면서
빛을 빠져나온 것들은 모두 칼질이 되어 있다
칼은 너무 오래 찌르고 있다 아는 얼굴이라고 했다
비탈에는 붉어지는 사과가 주렁주렁하다
덜 익은 사과가 기억으로부터 뚝 떨어진다
허공에는 벌어진 입
아래를 열면 그곳에 산 채로 아이들이 들어 있다
아이들은 허공에서 나오지 않는다 바람이 아이들을 보기 좋게
결대로 자르는 것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 그때
사과가 또 하나 툭 떨어진다
—《문장웹진》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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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 1968년 경기도 화성 출생.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