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다시보기

벌초, 하지 말걸/유안진

시치 2011. 11. 3. 23:58

벌초, 하지 말걸 /유안진

 

떼풀 사이사이

패랭이 개밥풀 도깨비바늘들

방아깨비 풀여치 귀뚜라미 찌르레기 소리도

그치지 않았는데

살과 뼈 녹여 키우셨을 텐데

 

다 쫓아 버렸구나

어머니 혼자

적적하시겠구나

 

-시집 『 둥근 세모꼴 』,《서정시학 》

 

 

엔솔리지 계간 『 시하늘 』, 「2011년 가을호」 에서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 그게 세상살이다. 세상살이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처럼 보여도 그 보이는 것 하나 마음대로 어쩔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많다. 유안진 시인의 「 벌초, 하지 말걸 」을 읽으면서 적적함, 단절, 외로움, 사무침, 이러한 말의 수식을 땅에 묻고 혼자 지내는 어머니, 아마도 시인 가슴에 고스란히 더 깊게 묻혀 있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나라에 살아간다는 것을 느낀다. 조상의 묘를 벌초하고 예를 올리고 그 조상의 숭고함을 기리고 있으니...... 누군 공감하지만 마음으로 쉽게 풀어내지 못하는 말들일 것이다. "살과 뼈 녹여 키우셨을 텐데" 라는 말, 어머니이 무덤에서 살아가는 것은 시인 자신의 마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니고, 애정도 아닌, 패랭이 풀이고, 개밥풀이고, 귀뚜라미들인데, 그것을 벌초하며 어머니의 친구들을 , 벗들을 쫓아내는 심정을 갖는다는 것, 우리 가슴에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세상살이 하면서 우리 가슴에 무엇을 쫓아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