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②- 윤제림 ‘매미’ 외 11편

시치 2011. 9. 20. 00:58

자칭 엄숙주의자의 꽤나 발랄한 시시

 

시인 윤제림씨는 느긋했다.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내 타고난 성량대로 쓰던 시를 계속해서 쓰겠다”고 했다. “노력한다고 가수 이미자가 달라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여유에서 웃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시인 윤제림(52)씨의 생업은 카피라이터다. 동국대 국문과 77학번인 그는 졸업 후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꼬박 10년을 일하고 독립했다.

 2003년부터는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프리랜서로 광고 일을 한다. 업계에서나 학교에서 통하는 그의 본명은 ‘준호’다. 언제 한 번 만나자는 의례적인 인사말 하지 마라, 사랑은 미루는 게 아니다 같은 감각적인 내용으로 몇 해 전 주목 받았던 한 통신사의 광고 카피가 그의 작품이다.

 ‘광고쟁이’가 연상시키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시인으로서 윤씨는 학연·지연은 물론 띠 동갑 같은 것까지 챙기는 좀 촌스런 사내다. 같은 과 동기인 문학평론가 장영우씨의 증언이다.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던지, 그의 필명 ‘제림(提林)’은 고향 제천(提川)의 명물 의림지(義林池)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이런 면모에 어울리게 그의 시 세계는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웃기는 유머가 두드러진다는 평을 받아왔다.

 유머와 해학은 올해 윤씨의 미당문학상 후보작들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며 키득거리게 되는 시가 한 두 편이 아니다.

 전문을 소개한 시 ‘매미’의 첫 행을 윤씨는 굳이 ‘내가 죽었는데’가 아니라 ‘내가 죽었다는데’로 썼다. ‘죽었는데’라는 담담한 진술이 아니라 약간 과장된 ‘∼다는데’를 떡 들여앉히고 보니 어쩐지 ‘매미가’ 앞에 ‘세상에나’ 같은 말이 생략돼 있는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미물이 자신의 죽음을 열심히 슬퍼하는 광경과 맞닥뜨린, 귀신도 못된 허깨비 화자의 황당해하는 정경이 실소를 자아낸다. 두 번째 연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상황.

 세 번째 연의 ‘대체 누굴까’는 시를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상황에서 구해낸다. 매미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은 뭘까. 윤씨의 2008년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의 해설에서 시인 이홍섭씨는 윤씨 시의 특징의 하나로 불교적 세계관을 꼽은 바 있다. 모든 존재는 여러 요소들이 끝없이 어우러지고 의존하면서 성립한다는 이른바 연기(緣起)적 세계관이다. 매미는 혹시 시의 화자의 우주적 친구인 것은 아닐까.

 정작 윤씨는 자신의 시의 해학적 요소에 대해 시치미를 뗐다. 의도한 게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실제로는 굉장한 비관론자이자 엄숙주의자”라고 했다.

 예심을 한 최정례 시인은 “과거 윤씨는 유머를 잘 쓰면서도 약간 조선시대 선비 같은 고답적인 데가 있었는데 이번 후보작들은 모던한 느낌까지 더해져 발랄하면서도 경쾌하다. 골고루 좋다”고 평했다.

신준봉 기자

매미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가 제일 오래 울었다

귀신도 못되고, 그냥 허깨비로

구름장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매미만 쉬지 않고 울었다

대체 누굴까,

내가 죽었다는데 매미 홀로 울었다

저도 따라 죽는다고 울었다.

◆윤제림=1959년 충북 제천 출생. 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 『그는 걸어서 온다』 등.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