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 김정환 ‘귀’ 외 9편

시치 2011. 9. 20. 00:49

[제11회 미당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 김정환 ‘귀’ 외 9편

 

비틀어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들




가는 비는 세상을

씻어내리지 않고 세상을

적시지 않고, 가는 비는 세상의

귀지,

제 몸에 귀를 기울이는

귀지,

가는실잠자리 가는

장구채 위에 내리는

가는 비는

귀지.


시인 김정환씨는 1980년에 등단했지만 여전히 시가 젊은 시인 못지 않게 새롭다는 평을 듣는다. 삶과 언어와 감각을 언제나 민감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학동네 제공]

시인 김정환(57)씨는 문학상이라는 ‘제도’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특히 1년 동안 성실한 땀방울을 흘려가며 일군 시편(詩篇)을 심사 대상으로 하는 미당문학상과는 더 그렇다. 김씨는 어쩐지 열정적이고 급작스럽게 왈칵왈칵 시를 쏟아낼 것 같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믿을 수 없는 생산력으로 장시집 세 권을 잇따라 펴냈다. 368쪽짜리 『드러남과 드러냄』(2007년), 579쪽짜리 『거룩한 줄넘기』(2008년), 487쪽짜리 『유년의 시놉시스』(2010년) 등이다. 나눠 발표한 걸 묶은 게 아니라 써뒀다 한 번에 펴낸 전작(全作)이다 보니 문예지에 한 두 편씩 시를 발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심사할 시가 없었다.

 상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그런 작업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등단 초기 현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해 80년대 중반 이른바 ‘선전선동시’ 시기를 거쳐 일종의 문명사적 조망을 시도하는 최근까지, 그의 문학반경은 광활하다. 문화기획자로서 그는 인터넷 문화예술학교를 운영했고, 전라도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키우는 국가사업에도 관여했다. 이런 그를 가두기에 문학상은 너무 반듯해 보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상을 주겠다는데 마다하지는 않을 터. 김씨는 바쁜 와중에 ‘기습적으로’ 열 편의 시를 계간 ‘자음과모음’ 올 봄호에 발표했다. 주목 받는 여성 시인 김이듬씨와 같은 수의 신작 시를 선보이고 평론가 황현산씨와 좌담을 하는 특집을 위해서다. 이 열 편이 고스란히 이번에 미당 후보작이 됐다.

 김씨는 시와 산문에 두루 능하다. 어떤 찰나의 느낌을 근사(近似)하게 되살려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번 후보작 열 편 중 일곱 편은 ‘이것들이 인간 죽음에 간섭’이라는 큰 제목으로 묶은 연작시다. 이에 대해 평론가 황씨는 “어떤 정신 기계, 훌륭하고 부지런한 수 만 마리의 말이 한꺼번에 돌리는 기계”가 연상된다고 평했다. 그만큼 죽음의 다면적인 양상을 현란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연작시는 모기·거미·간장 게장 게 등의 입을 통해, 또 LP 음반, 수(數)의 역사 등에 비춰 죽음에 대한 김씨의 요즘 생각을 담고 있다. 시들은 우선 익살스럽다. 간장에 절여진 게가 자신이 단지 ‘질긴 목숨 산 채 독한 간장 속 느리게 끊어져/생긴 울화의 맛? 밥도둑?’이냐며 음식으로만 보는 인간의 시각을 꼬집는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시의 핵심 메시지는 쉽지 않다. 장시집 세 권에서 갈고 닦은 예술·역사·인간 등에 대한 김씨의 사유가 농도 짙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장시집과의 연관에서 읽어야 뭔가 보인다는 얘기다.

 ‘귀’는 소품이다. ‘세상을’‘세상의’가 이루는 1~3행의 각운(脚韻), ‘가는 비’와 ‘귀’를 동격으로 몰아 미세한 비 소리를 부각시키는 솜씨, ‘가는실잠자리’‘가는장구채’ 같은 말들의 여린 맛 등이 재미있다.

신준봉 기자

◆김정환=1954년 서울 출생. 8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황색예수전』『사랑, 피티』 등 저서 100여 권. 백석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