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스크랩] 황지우

시치 2011. 7. 10. 13:20
 



12월                                      황지우


12월&


12월의 저녁 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은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家産)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生)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12월의 숲                                 황지우


12월의 숲


눈 맞는 겨울나무숲에 가 보았다

더 들어오지 말라는 듯

벗은 몸들이 즐비해 있었다

한 목숨들로 연대(連帶)해 있었다

눈 맞는 겨울나무숲은


목탄화(木炭畵) 가루 희뿌연 겨울나무숲은

성자(聖者)의 길을 잠시 보여주며

이 길은 없는 길이라고

사랑은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이라고

다만 서로 버티는 것이라고 말하듯


형식적 경계가 안 보이게 눈 내리고

겨울나무숲은 내가 돌아갈 길을

온통 감추어버리고

인근 산의 적설량(積雪量)을 엿보는 겨울나무숲

나는 내내, 어떤 전달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1983년/말뚝이/발설                        황지우


1983년/말뚝이/발설


워어메 요거시 머시다냐/요거시 머

시여/응/머냔 마리여/사람미치

고 화완장하것네/야/머가 어쩌고

어째냐/옴메 미쳐불것다 내가 미

쳐부러/아니/그것이 그것이고/

그것은 그것이고/뭐/그것이야말

로 그것이라니/이런/세상에 호랭

이가 그냥/캭/무러갈 불 놈 가트

니라고/야/너는 에비 에미도 없

냐/넌 새끼도 없어/요런/호로자

식을 /그냥 갓다가/그냥/캭/워

매 내 가시미야/오날날 가튼 대멩

천지에/요거시 머시다냐/응/머

시여/아니/저거시 저거시고/저

거슨 저거시고/저거시야말로 저거

시라니/옛끼 순/어떠께 됫깜시 가

미 그런 마를 니가 할 수 잇다냐/

응/그 마리 니 입구녁에서 어떠께

나올 수 잇스까/낫짝 한번 철판니

구나/철판니여/그래도 거시기 머

냐/우리는/거시기가 거시기해도

거시기라고 미더부럿게/그런디이/

머시냐/머시기가 머시기헝께 머시

기히어부럿는디/그러믄/조타/조

아/머시기는 그러타치고/요거슬

어째야 쓰것냐/어째야 쓰것서어/

응/요오거어스으을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95 청량리―서울대                         황지우


95 청량리―서울대


기껏 토큰 한 개를 내미는 나의 무안함을

너는 모르고

졸고 있는 너의 야근과 잔업을

나는 모르고

간밤엔 빤스 속에 손 한번 넣게 해준 값으로

만 원을 가로채간 년도 있지만

지금 내가 내민 손 끝에 광속(光速)의 아침 햇살, 빳빳하게 밀리고 있구나

참 멀리서 왔구나, 햇살이여, 노곤하고 노곤한 지상에,

그 햇살 받으며 빨간 모자, 파란 제복,

한남운수 소속, 너의 이름, 김명희

너의 가슴에 단

ꡒ친절․봉사ꡓ의 스마일 마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모성의 누이여 용서하라

나는 왜 이러는지 세상을 자꾸만

내려다보려고만 한다 그럴 적마다

나는 왜 그러는지 세상이 자꾸만

쨘하고, 증오심 다음은 측은한 마음뿐이고, 아무리 보아도

그것은 수평이 아니다 승강구 2단에 서서

졸고 있는 너를 평면도로 보면

아버지 실직 후 병들어 누움,

어머니 파출부 나감,

남동생 중3, 신문팔이

생계(生計)는 고단하고 고단하다

뻔하다

빈곤은 충격도 없다

그것은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너의 아버지의 무능 때문이다?

너의 어머니의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아서이다?

네가 재능도 없고 지능이 없어서이지 악착 같고 통박만 잘 돌려봐?

그렇다고 네가 몸매가 좋나 얼굴이 섹시하나?

TIME지(誌)에 실린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몽고인처럼

코는 납짝 광대뼈 우뚝 어깨는 딱 벌어져 궁둥이는 펑퍼져 키는 작달

아, 너는 욕먹은 한국 사람으로 서서

졸고 있다

일하고 있다

그런 너의 평면도 앞에서

끝내는 나의 무안함도, 무색함도, 너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모독이며

나의 유사-형제애도, 너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속죄는 못 된다.

그걸 나는 너무 잘 안다

그걸 나는 금방 잊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황지우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구반포 상가 앞 버스  정류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녀는 건널목에 서 있다.

전화 박스 속에서 보았던, 적신호(赤信號)에 걸린 거리, 오후 6시 반.

인간의 내장을 긁어내주는 도살장(屠殺場)으로 가는 길이 어디예요?

어디냐니깐요? 운명의 전갈좌가 가리키는 곳 말예요?

이미 물렸어요. 번지는 독을 해독해주는 약국(藥局)이 건너편에 있나요?

마법(魔法)에서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은 환멸뿐인가요?

집 나올 때 문에다가 이미 못을 다 박아버렸어요.

아뇨, 네, 네, 아니란깐요. 주소는 잊어버렸대두요.

미국 가는 날짜 말인가요?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요.

그녀는 그때야 그녀를 완강하게 가로막고  있는 게 적신호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리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사람들이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흰색의 횡단선을넘어 정차해 있는 차들 앞을 그녀는 타박타박, 천천히 걸어서 건넜다. 청신호는 벌써 깜박깜박 그것의 단명(短命)을 알렸다.

건넌다는 게 뭘까, 그녀는  생각했다.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그 길은, 검은  페이브먼트 때문이었을까, 자기의 관(棺)을 타고 건너는 검은 강물 같았다.

반포 켄터키 치킨. 냉방완비.

모가지와 발목이  잘린 닭들이 꼬챙이에 꽂혀  전기구이통 속에서 실타래처럼 뱅뱅  돌려지고있는 것을 그녀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체를 기름에 튀겨서 맛있게 뜯어먹는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잃어버린, 황금 비늘로 덮인, 억센 발톱에 대해, 투쟁의 피 흘리는 벼슬을 기념하기 위한 붉은  왕관(王冠)에 대해, 새벽의 숲을 일깨우는, 황금  뿔로 된 부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아냐, 그게 아냐,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먹이만 보면 일렬횡대로 꽥꽥 소리지르며  몰려드는 양계장 폐닭들이었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치킨집 문이 열릴때마다 양념으로 가린 닭살의 누린내가 문의 풀무질에 의해  밖으로 뿜어져나왔다. 하필이면 정류장이 치킨집 앞에 있을 게 뭐람,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이마에 칼자국 같은 주름이 새겨졌다. 반바지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그의 가족을 데리고 치킨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오늘 사냥은 위험한 것이었소, 여보.

이놈의 눈깔은 어두운 데서 날  지켜보고 있었어. 보라구. 이놈의 살의의 이빨들. 하마터면 이놈의 이빨이 나를  물고 그의 가족들의 으르렁거리는 식욕(食慾) 앞에  끌고 갔을 뻔했소. 그들이지금 그런 것처럼.

내장을 긁어낸 도살장에서의 단란한 저녁 한 끼, 그녀는

육식의 가족을 경멸했다.  느끼한 것들은 참을 수가 없단 말야,  혐오감이 그녀의 위(胃)를 또쓰리게 한다. 다치기 쉬운 밥통을 달고 날아다니는 새.

위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 김선생  요즘 밥통은 괜찮아요, 당돌한 그 남자는 말했었다. 모래가 가득 찬 밥통을 그녀는 달고  있다고 그녀는 지금 생각했다, 어떨지 몰라, 내장을 모두 도려내버리면. 내 영혼은 증발할까?

먹을 필요를 떼내버리고 날아다니는 새. 지평선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흙 묻은 날개짓. 양산리들판을 지나가는 미군 폭격기의 그림자를 그녀는 생각했다. 푸른 띠와 붉은 별들로 장식된, 순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한글 아크릴 간판을 단 `맥도널드 도우넛'집을 그녀는

본다. 후리후리한 서양 남자가 스매시를 멕이기  위해 라켓을 높이 쳐들고 있는 마네킨을 쇼우 윈도우에 내놓은 스포츠 용구 전문점 `월드컵'을 그녀는

본다. 카페 `추억'과 레스토랑 `숲속의 빈터'를 그녀는

본다.

그녀는 어스름이 석회수의 침전처럼 내리고 있는 거리를 보았다.

동대문 야구장을 한  바퀴 돌고 오는 289  버스가 붉은 `서울대'라고 쓰인 종점(終点)을  향해질주하고 있었다. 진흙으로  빚은 사람들은 가득 담고. 신나를 끼얹어도  안 탈 사람들을 가득 담고. 불구덩으로 들어가는 진흙 인형.

너 어디 가니? 미국! 미이이이이국!

거기가 네 터미날이니! 아냐, 터미날은 사람들이 떠나는 곳을 의미하지 않니?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날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반포 치킨집 앞 버스  정류장에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 옆,  사람들이 담배 꽁초를 버리거나 가래침을 뱉도록  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쓰레기통에 부착된, 이장호 감독,  안성기 이보희주연의, 철 지난 `무릎과 무릎 사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기쁨은 오로지 생식기(生植器) 근처에 있으며,

이 시대의 사랑은 오로지 치정(癡情)이야.

자기를 치근덕거리며 따라오는,  자기를 김선생이라고 부르는 그 당돌한 남자가,  그녀는 지겨웠다.

뭐 하러 그곳에는 가는 거요, 회한을 늘리러? 그 지겨운 남자가 물었다.

아뇨.

그럼? 깨지러 가는 거요? 그 지겨운 남자가 물었다.

아뇨, 깨질 것도 없는 걸요.

남자가 말했다. 벼랑에까지만 동행해주겠다고.

왜 가로막는 거예요? 비켜주세요!

남자는 말했다. 이건 개입이 아니라 동행이라고.

그녀는 정류장 이정표를 올려다보았다.

328951324번 : 무릉동(武陵洞) 무지개 아파트.

298471325번 : 도화동(桃花洞) 진달래 아파트.

그래, 난 지금 전갈좌에게 가고 있는 중이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난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가는  게 아냐,  너희에게 소생(蘇生)의  닭피를 먹여줄 성배(聖杯)를 찾으러 가는 것도 아니란 말야, 그녀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있지?

난 전갈좌의 독을 훔쳐와야  해, 독에서 깨어나는 순간 난 잠들거야,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 무릉동의 휘황한  무지개 기둥에 스며드는 물의 높이로  재는 시간으로는, 몇 초쯤 지났을까? 그 도화동의 진달래 꽃잎 위에 소름처럼 돋은 이슬방울에 저녁 노을이 스치는 순간만큼 지났을까?

그녀는 타박타박,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타박타박,

그리고 타박타박, 자신의 등뒤에서 따라오는 자신의 발소리를 그녀는 들었다. 타박타박.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사람은 변명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인지, 타박타박.

되돌아보면 돌소금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로 하여금 되돌아보게 했다.

어머, 너 언제부터 여기까지 따라왔니?

그녀의 등 뒤에는, 놀랍게도, 눈부신 금빛으로 도금된 낙타  한 마리가 꼴 먹으러 따라온 굶은 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냐, 내 손에는 너와 연결된 고삐가 없다구.

낙타는 너무나 찬란해서 만져지지가 않았다.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낙타는 냄새도 소리도 가닿을 수 없는, 다만 빛의 윤곽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낙타는 영화 기법으로 말한다면`오우버 랩' 수법으로  차량들과 사람들과 가두 신문대와  버스 토큰 판매소 속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지상의 시간으로 피엠  8:30 을 가리키는, 구반포 상가 앞을 통과하는, 영등포―천호동 구간의 21번 버스가,  상계동―봉천동 구간의 303번 버스가, 신세계 백화점―방배동 구간의 42번 좌석버스가 막 낙타의 몸을 지나갔다.

신기해. 넌 어떻게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공간 속에 있을 수 있니?

저 아파트  좀 봐. 사람들은 공중(空中)에까지도  사적(私的) 소유(所有)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가격을 매겨논  거. 넌 다치게 하지도  무너뜨리지도 않고 지나가는 구나.

그녀는 이제, 구반포 삼거리에서 강변에 이르는 길로 꺾어들어갔다.

그 길은 어둑어둑했다. 수양버들 가로수 그림자 때문에.  그렇지만 수은등 불빛을 받는 수양버들은 분수의 꼭대기 같앴다, 그녀는 생각했다.

낙타야, 목마른 낙타야, 너의  염통에는 순수한 의미의 물만 흐르고 있겠지? 먼 길을  온 너의 밥통엔 나처럼 모래만 가득하겠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의 그늘진 등성이같은 황금  낙타의 등을 힐끗, 쳐다본다.목욕탕에 게으르게 드러누운 여자의  알몸 같애, 그녀는 생각했다. 내 몸에 가까이 오지  마랏. 내 영역에 발 들여놓는 자의 발을 전갈이 물으리라.  그녀는 하악의 뼈가 드러나게 이를 악물었다.

낙타, 넌 질량이 없어, 없어, 넌, 내장이, 넌 기쁨도 괴로움도 없어.

낙타, 너 임재(臨在)할 뿐, 부재(不在)했어.

그녀는 지나온 길에 남긴 발자욱마다 자신의 핏자국을 남긴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그런 흔적으로써, 변명할 길 없는 나의 부재를 옹호하게  될지도 몰라,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피곤하다,  그녀는 느꼈다. 그녀는 어둡고 후미진 곳을  먼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현기증을 뚫고  반포 주공아파트 2단지 열 관리소의 굴뚝이 높이 치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칼칼한 목구멍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보온의 하수구(下水口).

편히 잠들고 싶어하는 주민들의 남근숭배(男根崇拜) 같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따뜻한 물의  행복감을 보내주는 복잡한 배관을 하체에  묻은, 지금은 식어 있는 근(根),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에  서약하고 정관수술을  하고 입주한  그들의.

그녀는 수양버드나무에 기대었다. 한강 쪽에서 여름밤  강바람이 불어왔고, 수양버들은 냇물에 머리를 감는 조선조 중엽의 여인네처럼 머리를 풀었다.

사람들이 모래와 시멘트를 짓이겨서 집을 짓고 보도블럭을 깔고 검은 역청으로 길을 덮기 전,여기는 강물이 제 입으로  물어다 쌓아놓은 모래밭이었을 거야, 그녀는 사라진 강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오한을 느꼈다, 갑자기, 나는 이제 서른한 살이야, 그녀는 떨었다.

서른 한 살, 작은 디 엔 에이 정보를 가진 벌레가 이렇게 다 커버렸다니, 그녀는 떨렸다.

낙타야, 나의, 낙타야 어서 온. 나를 태워다오.

여기서부터 벼랑이야. 일생에 단 한 번만 건너는 것을 허용하는 강이야.

희망이 우리를 건너게 할 거야. 희망(希望)이.


나이 : 서른 하나, 성별 : 여자, 직업 : 미상, 주소  : 미상인 한 `사람'이 1986년 6월 19일(목요일) 21시, 검은 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구사일생                                  황지우


구사일생(九死一生)


ꡒ남산(南山) 제1호선 터널. 붕괴 직전ꡓ이라고 해도

차량들은 여전히, 태연히.

어쩌면 붕괴될지도 모를 개연성이  있는, 남산을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제1호선 터널,  그 칙칙하고 컴컴하고 매캐하고 긴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다 뒈져도 나만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을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건지.


이기심(利己心)은 얼굴에 철판을 깔게 하고

양심(良心)은 가슴에 기부스를 하고


서울 사람들을 세련되게 하는 것은 신경질과 무감각이다.

심장에 맹장염이 걸릴 수도 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근황                                      황지우


근황(近況)&


벗이여, 나의 근황(近況)은 위독하다. 위문  와다오. 붉고 흰 국화꽃 들고. 장의사집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섬찌ㅅ섬찌ㅅ하다. 구긴 종이가 휴지통에  정확하게 들어가주지 않은 그날은 내내 불길하고, 왜 나는 자꾸자꾸 예시(豫示)받으려 하는지. 왜 자꾸 목숨이 한숨인지, 나는 모르겠다. 벗이여, 지난 여름, 그대는  범람(氾濫)하는 강(江)가에서 무슨 소리를들었느냐. 우리들 목숨의  치수 바로 밑에 출렁이는  유량(流量)을 보았느냐. 상 황 통제 불 능 상황통제불능. 응답은 없었다.  영원히. 1984년, 무사안일한 위험 수위 위로 대홍수의 날들은 가고, 1988년, 대망(大望)도 빨리  지나가라. 우리들 패인 분지에 헐벗은 이재민으로 남아 울리라. 지나가라. 황폐한 축제여.  노예들의 환희여. 아, 대한민국(大韓民國), 대한민국(大韓民國) 헌법(憲法)은 여성명사(女性名詞)며 대한민국(大韓民國) 현대사(現代史)는  변태성욕자(變態性慾者)의병력(病歷)이다. 누가 이 여인을  범하랴.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누가 이 여인을.그대 몸에 깊은 구멍  있도다. 상처인가 통로인가. 깊고 굶주린 구멍. 물 질척거리는  그대 영혼의잔잔한 오물이여. 폭등하는 첨탑이여. 교회는 자본주의와 성교(性交)한다. 아 마침내 땅 끝까지 왔구나. 우글우글하게 까놓았네! 그들의  먹이는 불안한 신흥 중산층이다. 그대 목마른 영혼을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한 값을 내라. 가까이 오라. 양변기에 앉아  똥 누는 자들이여. 밀리고 밀린 똥냄새가 맡고 싶구나.  그대들은 이주일(李朱一)에게 침을 뱉고 그는 돈을  번다. 이게 원리원칙(原理原則)이야. TV 시청료를 내지 맙시다. 현실을 착색(着色)하지  맙시다. 확실한 것은, TV는 공범자(共犯者)다. 벗이여, 이제 나는 시(詩)를 폐업처분하겠다. 나는  작자미상(作者未詳)이다. 나는 용의자이거나 잉여인간이 될 것이다. 나는 그대의 추행자다. 아아, 나는 시(詩)의 무정부주의를 겪었고시(詩)는 더 이상 나의 성소(聖所)가  아니다. 거짓은 나에게도 있다. 우리는 다시 레이건 치하(治下)에서 산다. 극악무도한 놈! 젊은 김(金)순경이 변심(變心)한 애인집 일가를 몰살하고 그도 곧게뻗은 사건 있지.  그것도 우리 사회가 성숙해가는 데 거쳐야  할 방역(防疫)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그놈은 구조기능주의자임에 틀림없어. 아가리를 찢을 놈. 그들과 나는 덮여진 형제살해(兄弟殺害)의 시대에 산다. 우리는 연루자다. 벗이여 우리는  코미디언도 순교자도 못 된다. 혹은 모든 시대에 코미디언은 순교자의  대칭이다. 김지하를 보라. 그대가  캄캄한 날의 그의 옥중서한(獄中書翰)을 대독해봐. 나는 시(詩)의 현교(顯敎)를 믿었다. 나는  곧 개종한다. 나는 거칠어질것이다. 나는 종잡을 수 없다. 나는 왜 성조기(星條旗)가 독나방의  날개로 보이지. 악몽이여. 흉악한 시절이여. 내 가슴 뜨거운 문신(文身)이여. 이것은 증오일까 오류일까. 나는 나 이외의 삶을 범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혼수상태다. 벗이여. 위문 와다오. 우리 결별하자.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게로, 민음사, 1985






꽃말                                      황지우


꽃말


식물학 교수 박두식(朴斗植)씨(48)는 중증(重症)이라 했고,

의학협회 회장 이해만(李海萬)씨(57)는 단순히 생리적(生理的)이라 했다.

우려스럽다고 하는가 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민영방송 에므비씨 기자는 명륜동 대학가 앞 상인에게

마이크를 들이댄다.

푸른 안개 자욱한 춘계(春季)의 캠퍼스를,

적진(敵陣)에서 적진(敵陣)으로

보여준다. 노란 가래침을 뱉는 개나리꽃.

가정주부 안(安)정숙씨(34)는 ꡒ불안해요ꡓ라고 말했고,

택시 기사 김(金)상훈씨(42)는 ꡒ국민의 한 사람으로서,……ꡓ

걱정된다고 했다.

누르기만 하면 스테레오 타이프 카세트 테이프에서 말이 나왔다.

신문이 말하는 시계(視界)제로에 대해

치안본부는 절대로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고통의 배기통이 콱 막힌 버스가 급정거했다.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걸 몰라요?

기회에 민감하다는 하마평(下馬評)을 받고 있는 한 온건론자는 말했다.

중심의 상실을 쓴 예술사학사자 세들 마이어씨는

나치협력자였다.

4․19세대, 정부 여당 관념조정부장 김익달(金益達)씨(44)는

수유리 묘소에 헌화했다. 대리석 속의 상한 이름들.

상채기에서 꽃잎을 밀어내는 진달래.

상흔은 치유를 위해서 있다는 말로 그는 기념사에 가름했다.

그는, 정치적 위생관념을 강조했고

이성(理性)을 강조했다. 비위생적인 것에 대한 대안은 주문제 식단이었다.

이성의 기념 케이크 속에 방부처리된 이스트.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보균자였다.

주한 미군사령관 스튜어드씨의 `들쥐' 발언은 사실과 다름이

공식적으로 밝혀졌고,

한국인의 의식을 도굴(盜掘)한, 의식의 고고인류학자 이언영(李言榮)씨(52)는

일본 독자들이 더 좋아한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고,

한국인은 누르면 눌린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보다 의심스러운 것은 배후였다.

불타는 부산 미문화원의 배후에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대다수의 다수는 구경군일 뿐이었다.

액션, 스펙타클과 서스펜스. 개봉박두. 이게 현대 한국정치사다.

미국무성에서는 논평을 거부했다.

다만, 20일자 사설이 `희망(希望)', `헌신(獻身)', `사랑', `우정'의

꽃말에 `반공(反共)', `친미(親美)', `합의', `단언'이라는 흰 팻말을

박았다.

자물쇠에 꽂힌 열쇠, 꽃말.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황지우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


개나리꽃이피었습니다

미아리 점쟁이집 고갯길에 피었습니다

진달래꽃이피었습니다

파주 연천 서부전선 능선마다 피었습니다

백목련꽃이피었습니다

방배동 부잣집 철책담 위로 피었습니다

철쭉꽃이피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상상봉 구름 밑에 피었습니다

라일락꽃이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 후문 뒤에 피었습니다

유채꽃이피었습니다

서귀포 앞 남마라도 산록에 피었습니다

안개풀꽃이피었습니다

망월리 무덤 무덤에 피었습니다

망초꽃이피었습니다

동두천 생연리 봉순이네 집 시궁창에 피었습니다

수국꽃이피었습니다

순천 송광사 명부전 그늘에 피었습니다

칸나꽃이피었습니다

수도육군통합병원 화단에 피었습니다

백일홍꽃이피었습니다

태백산 탄광 간이역 침목 가에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꽃이피었습니다

봉천동 판자촌 공중변소 문짝 앞에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경북 도경 국기 게양대 바로 아래 피었습니다

그러나,

개마고원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영변 약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은율 광산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마천령산맥에 백두산 천지에

그렇지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무―슨―꽃―이―피―었―는―지

무슨꽃이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나는 못 보았습니다

`보고싶습니다'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나의 누드                                 황지우


나의 누드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제 손으로 제 몸을 구석 구석

훑어나가는 것은 한두 주일 동안의 때를 밀어내는

일만이 아니다. 일생(一生)이여. 이 부피만큼 살아왔구나.

질그릇처럼 아슬아슬하다. 대저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내가 있었던가. 나의 용적(容積)이 탕 밖으로 밀어내는 물?

거짓이 나를 만들어놨을 뿐,

두뇌의 격한 질투심. 열등감. 뭐 드러내기 좋아하는

허영으로 적재된 서른 몇 해. 헐떡거리며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왔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성자(聖者)다. 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뢰 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했구나.

벼락맞은 청춘(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요행이었을 것이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묵묵부답인 소작농이여. 그는

그가 떠나지 못한 신월리(新月里) 북평(北平)의 방풍림(防風林) 아래 윤씨

땅을 새마을 모자 채양으로 재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웃 도암재를 넘어 그는 장독 굽는 도공(陶工)이 되려 했으리.

그는 소목(小木)이었을까. 말없고 성깔 괴팍한 미장이였을까.

아 그는 대처에 나와 그의 바람기로 인해 노가다가 되었으리라.

극장 간판장이였거나 방직공장 경비원이었거나 철도 노동자였거나

추운 삶의 시퍼런 정맥을 따라 청계천(淸溪川)

평화시장까지 흘러갔으리라. 그는 땔나무꾼. 껌팔이. 신문팔이.

고물장사였었다. 역 뒤. 극빈(極貧)의 검은 강가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빈 창자로

서 있었고. 내장에 콸콸 넘치는 쓴 하수도. 뜨거운 내 눈알은

붉은 회충알들이 청천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지러웠다. 현기증 사이로 본 부. 모. 형. 제. 전가족이

각각이 고아였다. 자원입대한 형이 떠난 후

조개석탄을 주우러 침목을 세며 남광주(南光州)까지 걸어갔었다.

산물(産物)을 가득 실은 여수발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최저(最低) 생계(生計) 이하(以下)에 내 와 있는 차단기. 적신호(赤信號) 앞에

서 있던 불우한 날들이여.

풍진(風塵) 세상 살아오면서 나는 내 삶에, 그러나

그 모든 날들을 부재(不在)로 만들어버렸다. 고백은 지겹다.

모든 자화상이 흉칙하듯. 나는 내가 살던 노천(露天)을 복개했다.

캄캄한 여러 지류가 나를 지나갔다.

지나갔었다. 그리고 지나간다.

지금 나는 알몸이다.

내 손이 나를 만진다. 이것이 나다.

때를 벗기면 벗길수록 생애(生涯)는 투명하다.

낫자국. 칼자국. 자전거에서 떨어져 무르팍에 남긴

상처가 내 몸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돌아다보니 몇 바가지 물로 나와 같이

목전의 자기 일생을 씻어내는 알몸들.

알몸들이여. 나의 현장부재중인 `나'들이여.

그러나 등 좀 밀어달라고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다.

이태리타월을 들고 나는 한 노인의 등뒤로 다가섰다.

닿지 않는 나의 등으로.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내 마음의 개마고원                        황지우


내 마음의 개마고원


수많은 `너' 안에서 나는 `나'를 증언하게 된다.

너를 찾아서 영동 유흥가를 지나갔었다.

신흥 시가지 좋은 집들 사이 사이에,

아, 나는 황토에 뿌리박은 옥수수나무 몇 그루를 본다.

어디로 갔느냐, 너, 원주민이여?

거기 사람 있으면 소리지르고 나오시오.

대답 없고

옥수수나무만이 털을 꺼내놓고 모음(毛淫)을 한다.


가을, 내 마음의 개마고원이 청회색(靑灰色)의 개마고원으로 옮겨간다.


살아 있으세요. 없어서 그리운 당신.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着語):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눈보라                                    황지우


눈보라&


원효로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등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동사                                      황지우


동사(動詞)


한다.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소리난다. 울린다. 엎드린다. 연락한다. 포위한다. 좁힌다.  맞힌다. 맞는다. 맞힌다. 흘린다. 흐른다. 뚫린다.  넘어진다. 부러진다. 날아간다. 거꾸러진다. 패인다. 이그러진다. 떨려나간다. 뻗는다.  벌린다. 나가떨어진다. 떤다. 찢어진다. 갈라진다. 뽀개진다. 잘린다. 튄다. 튀어나가 붙는다. 금간다. 벌어진다. 깨진다. 부서진다. 무너진다. 붙든다. 깔린다.  긴다. 기어나간다. 붙들린다. 손  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  아, 이제다 가는구나. 어느  황토 구덕에 잠들까. 눈감는다. 눈뜬다. 살아  있다. 있다. 있다. 있다. 살아 있다. 산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동일방직을 지나며                         황지우


동일방직을 지나며


미순아, 미안하다.

강의하러 양산리 한신대까지 가면서도

네가 일하고 있는 동일방직을 스치기만 하였다.

지난 달 네 몸이 아프다고 하여 작은아버지가 완도에서  올라오셨다는 말을 듣고도 가보지 못했다.

배운 놈들 인정머리 없어서가 아니라

니가 노동자라는 사실에

이 못난 오빠는 가슴이 얹혔던 거다.

쉬는 날이면 집에 와서 몸도 녹이고 김치랑 밑반찬이라도 좀 챙겨가도록 해라.

어쨌든 몸 성하게 조심하고 연락 좀 해라.


(나는 편지를 찢어버렸다.)

(나는 안양으로 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황지우


똥개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똥개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똥개의 눈이하두 맑고 슬퍼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놈을 눈깔이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그랬더니그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를, 눈깔이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리나라  봄 하늘같이 보도랍고 묽은, 똥개의 그 천진난만-천진무후한 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에, 노란 봉투 하나 들고 서 있는, LONDON  FOG표(表) ポリェステル 100% 바바리 차림의, 나의 전신(全身)이, 나의 전모(全貌)가, 나의 전생애(全生涯)가  들어가 있다. 그 똥개의각막(角膜)→수정체(水晶體)→망막(網膜) 속의,  나의 이 전신(全身), 이  전모(全貌), 이전생애(全生涯)의 바깥, 어디선가, 언젠가 우리가  꼭 한 번 만났었던 생각도 들고, 그렇지 않았던것도 같고 긴가민가 하는데 그  똥개, 쓰레기통 뒤지러 가고 나, 버스 타러 핑  가고, 전봇대에 ←전씨상가(田氏喪家), 시온 장의사, 전화 999-1984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레이다를 빠져나간 새                      황지우


레이다를 빠져나간 새


자연보호(自然保護)하는

기지(基地)에로의 3박 4일 관광여행 :

핵지뢰밭 위의 푸른 도라지밭을 마구 밟고 다니는 노루.

산(山)까치가 콩알만한 불티로 레이다 그물을 빠져나간다.

새는 그물보다 높이높이 난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마음의 지도 속 별자리                     황지우


마음의 지도(地圖) 속 별자리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經)도 없다.

경(經)이 길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구만리(九萬里) 청천(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자기(自己)야.

우리 마음의 지도(地圖)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황지우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1. 마침내, 그 40대 남자도 정수가아아 ― 목놓아 울어버린다.

#2. 부산 스튜디오의 그 40대 여자는 카메라 앞에서 까무라쳐버렸다.

#3. 서울 스튜디오의 그 40대 남자는,  마치 미아가 된 열 살짜리 어린이가 길바닥에서 울듯,이젠 얼굴을 들고 입을 벌린 채 엉엉 운다. 정숙이를 부르며.

#4. 아나운서가 그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의 전신(全身)에는 지금 어마어마한 해일(海溢)이, 거대한 경련이 지나가고 있다.

#5. 각자 피케트를 들고 방영 차례를 기다리던 방청석의 이산가족들이 피케트를 놓고 박수를쳐준다.

#6. 카메라는 다시, 가슴 앞에 피케트를 내밀고 일렬  횡대로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맞춰지고―만 오천이백삼번, 만 오천이백사번…황해도  연백군, 함경북도 청진…형님, 누님, 여동생, 삼춘, 아버지, 어머니…

#7. 체구가 작은, 한복 입은 할머니 한 사람이  피케트를 들고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카메라는, `원산서 폭격 속에서 헤어짐'을 짧게 핥고 지나버린다.

#8. 다시 화면은 가운데로 짤려서 한쪽은 서울 스튜디오,  다른 한쪽은 대구 스튜디오를 연결하고― 여보세요. 성함이 김재섭씨 맞아요? 아버지 이름이 뭐예요? 맞아요. 맞어 재서바아, 응. 그래, 어머니는 그때  정미소에 갔다 오던 길이었지요?  미군들이 그때 폭격했잖아. 맞어,  할머니랑큰형님이랑 그때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방안에 총알 다섯 개가 들어왔다는 말 들었어. 맞어.둘째 삼춘이 인민군으로  끌려가 반공포로로 석방됐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맞지요?  맞어. 맞어요.맞어. 재서바아. 어머니 살아 계시니?  어머니이이―

#9. 화면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자기 가슴을 치며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중계홀 중앙으로 뛰어나간 김형섭씨를 쫓아간다.  그는 조명등이 눈부시게 내려쬐는 천정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대한민국만세를 서너 번씩 부르고 있다.

#10.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가 그를 다시 카메라 앞으로 끌고 왔을 때 그는 무슨 큰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계속  머리를 주억거리면서, 케이비에스 감싸함다, 정말 감사함다,  이 은혜죽어도 안 잊겠음다, 한다.

#11. 남자 아나운서는, 아까 김씨 입에서 얼결에 튀어나온, 방안에 총알이 다섯 개 들어온 대목이 켕기었던지, 그에게 그때의 정황설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네 네, 그때 전  적지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올려고 했지요.  그런데, 중공군이 내려오고, 또, 이북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서, 부랴부랴

#12. 화면은 이제 춘천 방송국으로  가 있다. 그리고 사리원 역전에서 이발소를 했다는 사람,문천에서 철공소를 했다는 사람,  평양서 중학교 다녔다는 사람, 아버지가 빨갱이에게 총살당했다는 사람, 일본명이  가네다 마찌꼬였다는 사람, 내려오다 군산서  쌀장수에게 수양딸을 줬다는 사람, 대구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사람, 부산서 행상했다는 사람.

#13. 엄마아 왜 날 버렸어요? 왜 날 버려!

#14. 내가 죽일 년이다. 셋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15. 아냐, 이모는 널 버린게 아니었어. 나중에 그곳에 널 찾으러 갔더니 네가 없드라구.

#16. 누나야 너 살아있었구나!

#17. 언니야 왜 이렇게 늙어버렸냐, 응? 그 이쁜 얼굴이, 응?

#18. 얼마나 고생했니?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메아리를 위한 각서                        황지우


메아리를 위한 각서(覺書)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


  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소리 들릴락말락


     (우리는 어느 계곡(溪谷)에 묻힐까 들릴까)


  줄넘기하는 쌍무지개


  둘레에 한 세상 걸려 있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목마와 딸                                 황지우


목마와 딸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은 시장이  있고 그 길로 한 백 미터쯤 위로 올라오면 호남  정육점이 있는데요, 거기서 오른쪽 생선가게 있는 샛길로 올라오면 신림탕이라고 공중목욕탕이 있고요, 그 뒤공터에 소금집과 기와공장이 있지요. 소금집은 루핑으로 지붕을 얹은 판잣집인데요, 거기서 다시 연립주택이 있는 골목길로 쭉 타고 올라오면 여덟 번째 반슬라브 가옥이 바로 우리 집이지요. 이 집에서 나는 번역도 하고 르포도 쓰고 가끔  시(詩)도 쓰면서 살지요. 마누라가 신경질부리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소금집 공터에 나와 놀지요. 공터의 큰 포플라나무  그늘에 앉아노인들은 화투를 치고.

어떤 날은, 리어카에 목마  여섯 대를 달고 아이들에게 백 원씩  받고는 한 이십 분이고 삼십분씩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그 그늘 아래로 오지요. 나는 환호하는  딸을 하얀 백말에 앉혀주고 그하얀 백말의 귀를 잡고 흔들어 주지요. 아, 나의 아름다운 딸은 내  눈 앞에서, 네 발을 묶은 용수철을 단방에 팍  끊고 튀어가는 듯하지요. 말갈기를  흩날리며 나의 아름다운 딸은  기와공장에서불어오는 모래 바람  속으로, 아, 노령 연해주땅으로,  멀고 안 보이는 나라로  들어가버린 듯하지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바퀴벌레는 바퀴가 없다                    황지우


바퀴벌레는 바퀴가 없다


ꡒ짐승 같은 놈!ꡓ (이것은 아내가 한 말)

ꡒ바퀴벌레도 즘생이야, 여보.ꡓ (이것은 내가 한 말)

그러나 바퀴벌레는 근엄한 검정색 예복, 아니 정복을 입었다.

무슨 일을 감행하는 집단들처럼

틈틈에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기어나와, ꡒ맞어ꡓ,

기어온다.

ꡒ짜식들, 기어나오긴 왜 기어나와?ꡓ

기어나와,

넘어서는 안 될 선(線)을 넘어서

그리고 한번 무너진 그 길을 따라

자꾸 자꾸 기어 나온다.

식생활(食生活)에서 성생활(性生活)에 이르기까지

나의 사생활(私生活) 전역에 투입되어,

ꡒ여보, 바퀴벌레 때문에 못 살겠어요.

우리 이살 가든가 이민을 가든가 해야지.ꡓ

비닐 장판을 열면 겨우내 새끼들을 수두룩수두룩 까 놓고

이것들은 생명체일까, 병원균일까?

개체일까, 집단일까?

도무지. ꡒ이놈들에게도 영혼이 있을까?ꡓ

수채 구멍 속에서, 구정물 찌꺼기통에서

벽으로, 찬장 그릇 속으로, 안방으로, 책장 사이로, 이불 밑으로.

어쩌면 우리가 잠든 새 콧구멍  속으로, 머리칼 속으로, 꿈꾸는 송과선(松果腺)에까지

공룡 크기만큼 확대되어 엄습해 오는

이 야간 침입자들.

어느새 우리와 공생공사(共生共死)하자는 듯,

어느새 묵인된 이 범법자들.

오줌 누러 불을 켜면, 화다닥, 동작 그만!

들킨 바퀴벌레는 젖은 세멘트 벽에 붙어서,

그놈은 그놈대로 비상을 걸고, 부지런히 더듬이를 돌려대며

나의 접근을 관찰,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그놈은 지금 그놈의 사선(死線)에 엎드려 있다.

그 사선은 나의 사선이다. ꡒ이번이 기회야.

놓쳐선 안 돼.ꡓ 여차하면 이놈은 눈 깜짝할 사이에

틈 속으로 매복해 버린다.

ꡒ죽여요.. 죽여 !ꡓ : 아내도 마루 끝에서 소리친다.

짠― 긴장 : ꡒ이놈, 우리 현세(現世)의 사생활을 분탕칠하는

이 더러운 놈, 네놈의 그 더러운 , 그 지상에서의 몸을

죽여 주마. 깨끗한 몸으로 교환하여 다시 태어나거라.ꡓ

중얼거리는 내 마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이놈을 갖다가, 슬리퍼로, 그냥,


딱!


(쳤다)

(나는 죽였다)


뱃때기가 터져나와, 새하얀 피 같은 이물질을,

내장(內臟)인지, 지놈이 처먹은 밥인지, 를 내놓고

그의 더듬이를 여러  번 흔들며, 그의 다족을  흔들며(즉, 발버둥치며), 그러나 무성(無聲)으로

죽어 간다.

죽여 놓고도 아내와 나는 끔찍해 한다.

그리고 즐겁다.

바퀴벌레는 바퀴가 없다 :

수레를 끌지 않는다, 쌍 !


餠煎こすシ觀壙  봄 ― 나무에로, 민음사, 1985






박쥐                                      황지우


박쥐&


  그는 자유롭다 : 그는 외롭다 : 캄캄한 날들과 환한 밤들 사이의 경계(境界)를 그는 알기 때문에, 그 불가능성을 그는 넘나들기 때문에.

  나는 시궁창에 살고 있다. 이 편안한 더러움이여. 전후(戰後)에

  태어난 후,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으며,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아무도.

  사랑하는 천적(天敵) : 이상하다, 천적(天敵)에게서 묘한 애정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은,

  내 안에 이적(利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접선자(接線者)여.

  1985년 5월 21일  pm 3시, 종로서적 앞으로 나오라(ps :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할 것). 종로1가에서 5가까지의 거리는 전투경찰(戰鬪警察)의 거리다.

  붙들려  가 털 깎인 경험의 소유자여,  견뎌라, 모독감을, 이 땅에 살기  위해서는, 살아남기위해서는.

  안심하라. 흰 이 드러내며 파르르르 떨며,

  털 세운 하이에나, 난,

  죽은 고기만 안심하고 탐식하는 이빨들을 위한 살덩어리가 아냐.

  때로는, 유학이나 가버릴까.

  다시 감옥으로 갈까,

  왔다리갔다리하는 내 험악한 무의식(無意識)의 요양소는 어디, 어디

  식은 팥죽을 담은 내 염통이여.

  다른 것은 다 속여도 시(詩)만은 못 속이겠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관대. 누가 나에게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ꡒ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ꡓ)

  현실에로 열린 나의 시적 통로는 련민이오.

  련민은 두가지가 있소.

  하나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의 그것이요,

  다른 하나는 상처받은 자의 그것이오.

  나의 그것은 나의 상처요.

  라고 답할까? 아냐, 연민은 도덕적 임포야, 혁명의 설사제야

  미문화원(美文化院)을 점거한 학생들, 자진 해산하고 나오다.

  국민들 크게 안도.

  아이들은 고도(孤島)로 갔다.

  기자놈들, 체제의 합승자들, 그들의 충성심은

  가면 같이 간다는 위기감이야.

  나의 동시대인들에게는 해태 타이거즈와 광주 사태를 연관 짓는 묵시록적 경향이 있.

  시(詩)는 나에게 성적(性的)이다 : 매혹과 수치심이 함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현실의 수태(受胎)이다.

  헛물키지 말고, 낳고 낳아라.

    나의 스승,  유  아무개  아무개는  위대한  무위도식주의자(無爲徒食主義者)이다.

  당신을 숭배합니다 : 너를 죽일거야.

  이중배 보아라. 어서 와서 나를 들것으로 옮겨가다오.

  여기는 막막한 섬이다.

                    85­05­27

                    종로에서

                    똥개로부터

  날뛰는 나의 정신을 나는 유물론으로 치유한다.

  미치광이병에는 이게 약이요, 극약이다.

  어느 날, 나는 월경(越境)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만원버스 속에서 늙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

  그 늙은 여자는 창 밖만  내다볼 뿐, 내 무거운 가방은 받아주지 않는다. 철판이 깔린 가슴.개. 똥. 씹. 걸레. 튀김. 죽일. 다음날 아이 업은 젊은 여자가 내 자리 쪽으로 다가온다.

  겁부터 난다. 나는 눈을 감고 가수(假睡) 상태(狀態)에 들어간다.

  너, 민중 없는 민중주의자! 가짜! 냄새 나! 꺼져!

  나는 왜 적(敵)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적전(敵前)에서 자꾸 뒤돌아보는가.

  80년대는 막장이냐.

  최전선이냐.

  너 살아 넘어갈래, 죽어 돌아올래. 그렇지만,

  돌아보라. 가장 현실적인 색(色)은 탄색(炭色)이다. 그대 손은 묻어 있다.

  내 마음 속의 동굴 속의 외로운 박쥐여

  내 피를 빨아먹어라. 실컷, 그대 투명한 색(色)의

  악령(惡靈)이 임할 때까지. 내 알몸의 투명한 색(色)의 닻이 해저(海底)의,

  밑 모를 심연의 땅을 찍을 때까지.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버라이어티 쇼, 1984                       황지우


버라이어티 쇼, 1984


  저 새끼가 죽을라고 환장을  했나, 야 새끼야 눈깔을 엇다 뜨고 다녀? /뭐 새끼야? 이 새끼가 엇다 대고  새끼야 새끼야 나발까는 거야? 좌회전차선(左回轉車線)에서 영업용  택시 운전수와 자가용 운전자(ah, he owns a Mark V GXL Ford)가 손을 하늘로 찔러대면서 악쓴다.

  하늘 높이,  아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교회 첨탑이  솟아있다. 빨간 네온싸인. 십자가(十字架)가 빨간 네온싸인의 `영동 카바레'  위에 켜져 있다. 무슨 통신사(通信社) 안테나탑(塔)같은 게……, 늦은 밤까지 어떤 썩을 놈의 영혼들과 교신중(交信中)인지.

  못 믿겠어. 그들의 `약속의 땅'으로는 들어가지 않겠어. 침략자들!

   노래야 나오너라 궁자작 짝짝/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궁자작 짝짝/  엽저언 여얼 다앗냐앙

  나의, 문학(文學),  행위(行爲)는 답이 아니라, 물음이, 다. 속,  없는 질문이, 며 덧 없는, 의,문이, 다. 끝, 없는 의혹이, 며 회의, 이며……끝없는의혹이며회의일까?

  그대의 의혹과  회의를 축하합니다(풍자적으로) ―제 12회 상록수 문학상  수상식에서. 이상하다. 그녀는 이 말이 전혀 진심으로 오지 않는다. 꽃다발을 받고 원로 문인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신문사에서 인터뷰도 따가고 했는데도 그 여류시인(女流詩人)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공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강간당하고 온 기분이었다.

  미쓰리는 옷을 홀라당 벗고 먼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 틈의  아침 햇살이여. 환한 먼지들이여. 환멸이여, 환멸이여. 죽고 싶도록, 죽이고싶도록!

  오늘 아침 버스를 타는데, 뒤에서 두 번째 오른쪽 좌석에 누군가 한 상 걸게 게워낸 자국이질펀하게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서로  먼저 앉으려다 소스라치면서  달아났다. 거기에는, 밥알 55%, 김치 찌꺼기 15%, 콩나물 대가리 10%, 두부 알갱이 7%, 달걀 후라이 노른자위 흰자위 5%,고춧가루 5%, 기타 3% 순(順)으로.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이게 우리의 지상(地上)의  양식(糧食)이랍니다. 퍼부어주세요. 퍼먹여주세요.

   그러면 농수산부장관, 나와서 답변하시오.  도대체 추곡수매가를 인상 못하는  이유가 머시요? 이제 와서 어디다 안면(顔面) 내세울 것도 없는 국민당(國民黨)의 ㄱ의원이 단상을 치고 핏대를 세우고 아무리 언성을 높여 보이, 농촌(農村)은 그들의 과거이고.

  야! 그렇다고  이렇게 놔두면 어떡허니? 뒤에서 두번째 왼쪽  좌석에 앉은 40대 중년신사가다소(多少) 신경질적(神經質的)으로 언성을  높인다. 답변 대신, 안내양은  뒤에서 두 번째 오른쪽그 자리를 신문지로 덮어두고만 간다.


  `시위  서울대(大)생(生) 4명 구속(拘束)' :  서울 관악(冠岳)경찰서는 15일 교내에서 시위를주도한 서울대(大) 4년  김(金)영수(22. 수학과) 이(李)혜자(21. 생물학과)  허희영(許熙暎)(23. 신방과) 신윤호(22. 지리학과) 등 4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행위로 구속했다. 김(金)군 등은 지난 11월 상오  1시 40분쯤 도서관과 학생식당 주변에서「민주학우투쟁선언문」이라는  반(反)정부 유인물 1천여 장을 뿌리며 시위를 주동한 혐의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 맨가슴에다 못을 박습니다.

  거봐! 그러니까 내가 뭐래든.

  이번 대형금융부정사건은 정부 고위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검찰총장이 발표한 이상, 이번 대형금융부정사건은 정부 고위층과 아무런 관련이 없

  ?

  이런 부호 하나 찍을 줄 모르는 신문이 신문(新聞)이냐? 관보(官報)냐?

  뭐 말이 많아, 짜식들 말야! 조져! 무조건 먼저 조져놓구 보라구!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는 얼굴 한번 움직이지 않고 소리로만 웃는다 철가면 철면피.

  40이 넘은 어느 영화감독이 여중 2학년짜리를 임신시킨 일이 있었잖아 ― 야아, 그게 그 속에 어떻게 들어갔을까? 들어갈 수 있었을까?

  모든 현실은 지옥이다. 그때마다.

  특히,  제3세계 신생국(新生國)들 가운데 일반화되었던 `일당독재현상'은 그들의  반(反)식민주의․반(反)제국주의 투쟁의 역사 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없다, 있다,  없다, 그렇다 없다, 아니다 있다,……

  어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韓國精神文化硏究院)에서 주최한 모(某)세미나에 패널 토론자로서5인(人)의 국립대학교수들이 참석했다.

  대학병원 정신병동(精神病棟) 창가 ―  붉은 제라늄이 피었다가 팍 사그라든다(F․O). 이 세상의, 아무리 하찮은 꽃일지라도, 거기에는 어떤  정신(精神) 같은 것, 혹은 어떤 정령(精靈)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붉은 제라늄에게는 붉은 제라늄의  정신(精神), 혹은 붉은 제라늄의 정령(精靈)이 있을 것이다.

  정신(精神) 좋아하시네 ! 무슨 얼어죽을 정신이냐, 정신이긴.

  박노석. 23세. 선반공. 월수입  10만 원. 그는 기름 묻은 손으로 고구마뎀뿌라를 집어먹는다.그의 손톱에 까만 때가  끼어 있었다. 그것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이선영(21세. 이대(梨大). 식품영양학과 3년)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튀김집 아줌마가  새 튀김을 가져다줄 때까지 박노석은 뎀뿌라를 어그적어그적 씹으면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그 여자를 뚫어지게 꼰아보았다. 이선영은 기분이 완전히, 잡쳐버렸다. 금방 씹어먹을 것 같은 그의 적의(敵意)어린  시선 앞에 자기 몸이 구석 구석 남김없이,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년 후 ― 에도 그의 아들이 그녀의 딸을 그렇게 만날까?

  수퍼마케트  양쪽 벽이 다 거울이다. 한쪽  거울이 다른 쪽 거울을 감시(監視)하고 다른  쪽 거울은 감시하는 한쪽 거울을 감시하고  한쪽 거울은 또또 그것을 감시하고 또또또 감시하고……

    `임제(臨濟)스님은 선상(禪床)에 앉았다가 내려와서  한 손으로 좌견(坐見)을 거두어 들고다른 한 손으로 마곡(麻谷)스님을 잡고서 물었다. ꡒ십이면관음(十二面觀音)은  어디로 갔니?ꡓ 마곡(麻谷)스님이 몸을 돌려  승상(繩床)에 앉으려고 했다. 임제(臨濟)스님은  주장자를 잡고 그대로 후려갈겼다. 마곡(麻谷)스님도 그것을 맞잡은 채 서로 붙잡고서 방장(方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공사장 입구에 자동인형인간(自動人形人間)이  붉은 손전등을 좌우(左右)로  흔들고 있다. 밤 11시가 넘도록 하염없이 좌우(左右)로 흔들고 있다. 공사중. 추락주의! 지하 20M

  어느 날 어느 때를 위해 지상의 삶을 일체 지하로 대피시키도록!

  이건 하나의 가정인데요, 만약,  만약에 말임다, 내가 이 말을 끝내자마자, 지금 당장 핵(核)폭탄이 서울 상공(上空)에 떨어진다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예비군 훈련 때 배운 대로 화생방 수칙을 지키겠다.

  가만히 앉아 있겠다.

  기도를 해본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心情)으로 면도를 한다.

  속옷을 갈아입는다.

  부모님 계신 고향을 향해 절을 한다.

  새끼들을 껴안겠다.

  꼬불쳐둔 양주를 마신다.

  마누라랑 최후(最後)로 한 코 하겠다.

  그렇다면  핵(核)이 귀하의 상공(上空)에 적재(積載)되어 있다는 사실을귀하는 알고 계십니까?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면서, 모르면서도 알며서, 알면서도 말 못 하면서,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진물을 빨고  있는 1천만 마리의 딱정벌레들. 날마다. 밤마다. 화 염 아래의 눈먼 삶. 가련한, 가련한, 아 가련한

  우리가 모두 한꺼번에 죽는다면 우리에게, 죽음은 없다.

  20대 여인(女人)의 등에 업힌, 생후(生後) 삼개월(三個月)짜리 갓난아이를, 젊은 탁발승이 경멸적인 눈꼬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욕정(欲情)의  더러운! 사타구니에서 연(蓮)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난 사람의 애벌레. 갓난아이는 세상 모르게, 세상을 두리번거린다(1984.1.31. 강남 터미날 귀성객(歸省客) 대열에서. 전주행(全州行) 차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바로 그 욕(欲)정이 인류(類)를 떠받치고 있어.

  종삼(鍾三). 피카디리극장(劇場)간판에는  유명한 우리나라 여배우(女俳優)가 노골적(露骨的)으로 가랭이를 짜악 벌리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연 3개월 간. 우측 하단에는 그녀가 벌거벗은 남자의 상체를 끌어안고 요동치는 씬도 있다. 눈을 감고  입을 쩌억 벌리고 헐떡거리며 신음을 쾌ㄱ쾌ㄱ 지르며. 한 시대의 삶과 문화(文化) 전체가 포르노그라프일 때 우리가 식은 새벽 방바닥에 엎드려 시(詩)를 쓰는 이것은 무슨 짓이냐? 무슨 짓거리냐?

  헬스 크럽의 석유난로 하나가 호텔  한 채를 새까맣게 태워먹고, 7층 8층 창가에서 서로 모르는 선남선녀(善男善女)가 헬기(機) 구명(救命) 로프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줄을 잡고 가다가 공중에서 떨어져 죽고,  구경꾼들은 그것을 구경하고, 9층 10층에서는 무더기로 엉켜서 사람들이 타죽어 있고.

  야 사람 뒈지는 것 한두 번 봤냐? 뭐, 30명밖에 안돼잖아.

  그러나 소설가(小說家)  김원우씨는 나와 술 마시면서, 한국 중산층들은  절대, 통일(統一)을 원치 않는다고 단언하고.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은 상봉 후 다시 뿔뿔이 이산(離散)하고.

   세월은 원통하다!  세월이 원통해!  세월이 원통!  그 세월이! 원통!  원통해! 이가  갈리도록.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죽은 그 어린이는 어느 한적한 시골 국민학교 교정에 동상(銅像)으로 서 있고.

  출근 시간 ― 횡단보도에  구청 직원들, 근처 은행원들, 동사무소 직원들이 `거리질서 확립'캠 페인 띠를 가슴에 두르고 혹은 그런 피케트를 들고 서 있고.

  질서(秩序)의 저 끝은 궁극적으로 칼 끝에 닿아 있고.

  선진(先進)이라는 이름의 끝 없는 행진(行進).

   근처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황색기(黃色旗)를 들고,  마구 건너  가려는 행인들을  저지한다.

  제지당한다. 모든 관공서,  모든 학교, 모든 군관민 직장에서. 십칠시 정각에 전국적(全國的)으로 동시(同時)에 국기 하기식이 실시되고,  무심코 지나가던 보행자도 황급히 서서 보이지 않는국기를  향해 경례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원기왕성하게, 군기가  꽉 들어서  거수경례를 하고.

   이런 모습을, 년  BIG BROTHER께서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 : "보기에  좋더라.ꡓ


餠煎こすシ觀壙  봄 ― 나무에로, 민음사, 1985






벽 3                                      황지우


벽 3


      간신히 국어선생이나 하면서 간신히 출판사나 나가면서 간신히 시(詩) 쓰고 사는 친구들과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저녁 대신 소주를 마시다가, 그럼 우리 모두 지금 여의도로 가자 해서 여의도동 1번지 KBS로 갔다. 아아, 프로퍼갠더의 대성전(大聖殿)이여, 통곡의 대리석(大理石) 벽이여, 고통의 소문자(小文字)여, 문신(紋身)들이여.


  25. 여동생 : 김정순(39) 찾음

   ㅇ개성에서 정지 유치원에 다녔음

   ㅇ1․4 후퇴때 대구로 피난나와 살던 중 3남매가 엄마와 헤어졌음

   ㅇ오빠 김우종, 여동생  인순, 정순, 셋이서  고아원에 있다가 정순이는 누가  수양딸로 데려갔는데 나중에 찾아가니 오빠 찾아나갔다고 했음

   ㅇ어머니는 갓난아이가 있었으며 집 앞에 기찻길이 있었음

   ㅇ오빠 : 김우종(42) 424-7342


  8617번 차원옥은 동생을 찾씀니다.

  동생는 차원실 륙십칠세(67) 별면은 세채

  고향은 평북 영변군 팔원면 석성동

  해방 전에 고향을 떠낮씀

  형은 차원목 칠십삼세(73)

  소림면에 출가하였씀

  현재는 서울에 거주함

  형에 저화열락처는 714-1258


  어머님 : 김학실(76)  언니 : 이금란(54)  동생 : 필녀(44) 정자(졸찌 42)

  1․4후퇴시 개성서 만나기로 함(옥순이는 군인차로 서울로 보냄)

  고향 :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하유리

  ※찾는 이 : 옥단, 옥분, 옥순(먹식이)

  603-2981


  찾는 사람 누님 조정님 47세

  6․25 피난시 대구에서 헤어짐

  동생 조용기 아버지 조창식 큰오빠 조응섭

  남동생 정섭(56)은 소문에 6․25 당시 인민군에 속해 있었다고 함


  사촌형 김창용(58)

  사촌형 김준형(53)

  조카 김대원(53)

  고향 : 만주 통화성 장백현 안민촌 풍락통

  찾는 사람 : 서울 성동구 마장동 김승용

  292-6277


  찾는 사람

  1.형님―이병호(승호) 66세

  2.동생―상호 60세

  고향 : 평남 강서군 동진면

  1.형님은 8․15 해방시 일본으로 갔다는 소식

  2.동생은 1․4후퇴시 월남하면서 헤어짐

  ☆이태호(63세) 857-3188


  동생 신문성 42세 문생이

  의정부 오목이에서 살다 6․25때

  둘째 문영이가 소를 끌고 먼저

  나간 것을 셋재 문성이가

  데리러 나갓다가 돌아오지

  않음 형 신문선 47 연락처

  의정부 452-7382


  세째, 전지곤(남동생)

  고향 : 황해도 연백군 해성면 염전부락

  6․25때 아버지가 인천 수용소에

  있을 때 첫째 오빠한테 편지가

  와서 찾으러 갔는데 행방불명

  셋째 오빠와 남동생 3명이

  인천 고아원에서 헤어짐

  전순덕 연락처 : 614-3107


  0861

  부모성명 : 미상

  오빠 : 안희덕

  6․25때 부산 광안리 동산 고아원에

  오빠가 데려다 주었음. 고아원에

  맡겨질 때 기어나가니 오빠가 다시

  업어다 주었음. 연락처 614- 9248

  찾는 사람 안인자 예명 김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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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부재                                      황지우


부재(不在)&


새털구름 밑으로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고

고공(高空)으로 올라간 나의 장형(長兄)은

지금 윤회(輪回)를 빠져나가고 있다.

아우는 무단 가출하고 없다.

우리 집은 빈 집이다.

가랭이가 찢어지려 하는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다.

아버지 기일(忌日)이 가끔 우리를 불러모을 따름

무영탑(無影塔) 속에서 올라오는 촛불.

부재(不在)가 우리를 있게 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비오는 날, 유년의 느티나무                황지우


비오는 날, 유년(幼年)의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유년(幼年)

부잣집 아이들은 식모가 벌써 데려가고

일 나간 우리 엄니는 오지 않았다

치(齒) 떨리는 운동장 끝

어린 느티나무 몸 속에선 이상한 저음(低音)이 우우 우는데

달 저물어오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빗줄기,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기어가는 것 같고

문고리에 매달린 동생들 이름 부르며

두 손에 고무신 꼭 들고

까마득한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었다


그 운동장으로부터 20년 후

이제 다른 생애(生涯)에 도달하여

아내 얻고 두 아이들과 노모와 생활수준(生活水準) 중하(中下),

월수(月收) 40여만(萬) 원, 종교 무(無), 취미 바둑,

정치의식(政治意識) 중좌(中左), 학력 대(大)퇴

의 어물쩡한 30대 어색한 나이로

출판사 근처에나 얼쩡거리며 사람들 만나고

최근 김영삼씨 동향이 어떻고, 미국 간

김대중씨가 어떻고, 잡담(雜談)과, 짜장면과,

연거푸 하루 석 잔의 커피와,

결국 이렇게 이렇게 물들어가는구나 하는 절망감과,

현장 들어간 후배의 경멸어린 눈빛 그런 작은 표정에도

쉽게 자존심 상해 하는 어물쩡한 30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색한 나이로

남의 사무실을 빠져나오다가

거리에서 느닷없이 기습해오는 여름비―

소년은 비 맞으면서 비닐 우산을 팔고

비닐 우산 아래서

비닐 우산과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성년(成年)

그 비닐 우산 속으로 20년 전 어린 느티나무가 들어와

후두둑 후두둑 몸 떨며 이상한 저음(低音)으로 울고

나는 여전히 저문 운동장 가에 혼자 남아 있고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산경을 덮으면서                           황지우


산경(山經)을 덮으면서


□ 1


적설 20cm가 덮은 운주사(雲舟寺),

뱃머리 하늘로 돌려 놓고 얼어붙은 목선(木船) 한 척

내, 오늘 너를 깨부수러

오 해머 쇠뭉치 들고 왔다

해제, 해제다

이제 그만 약속을 풀자

내, 정(情)이 많아 세상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세상이 이 지경이니

봄이 이 썩은 배

하늘로 다시 예인해 가기 전

내가 지은, 그렇지만 작용하는 허구를

작파하여야것다


□ 2


가슴을 치면

하늘의 운판(雲板)이 박자를 맞추는

그대 슬픔이 그리 큰가

적설 20cm,

얼음 이불 되어

와불 부부의 더 추운 동침을 덮어 놓았네

쇼크로 까무라친 듯

15도 경사로 누워 있는 부처님들

석면(石眼)에 괸, 한 됫박 녹은 눈물을

사람 손으로 쓸어 내었네


□ 3


운주사 다녀 오는 저녁

사람 발자국이 녹여 놓은, 질척거리는

대인동 사창가로 간다

흔적을 지우려는 발이

더 큰 흔적을 남겨 놓을지라도

오늘밤 진흙 이불을 덮고

진흙덩이와 자고 싶다

넌 어디서 왔냐?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샌드 페이퍼                               황지우


샌드 페이퍼


내가 터억하니 앉아 있는 이 데스크는

한때 보르네오숲이었다.

잘 자라온 나이테의 배때기에 비계를 불리며 원목(原木)은 즐거이

인도양 바람을 키웠다.

벌목꾼 마하트라씨(氏)는 일당을 받고

쓴 침을 삼키며 집으로 갔을 것이다.

인천(仁川) 대성목재(大成木材).

하루 종일, 견습공 김석만은 그것을

샌드 페이퍼로 문질렀다. 끝도 없는, 사막 같은 일.

청소도 하고 경리도 보는, 월수(月收) 13만 원짜리 미스 리가

미결재 서류를 잔뜩 갖다놓는다.

나의 노동은 매춘행위인가.

사방 데서 악쓰는 소리, 들린다.

내 몫, 내 몫,

내놔라.

내가 터억하니 앉아 있는 이 데스크는

말하자면, 나의 위장취업이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샛별                                      황지우


샛별


  샛별*아.

  이 밤길을 너는 먼저 달려가 새벽 산길을 비추고 있거라.

  이 어둠 저편 누가 플래시를 버르장머리없이 비추며 온다.

  두려워 말라. 그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어둠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무서운 것은, 다가오는 물체를 크게 보는 내 마음속에 있다.

  네가 자라서 너의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몇 차례

  불심검문을 당하고 굴욕을 통과하여 더 탄탄해진

  네 길을 갈 때 너도 알게 되리라.

  쉽게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먼 새벽 산정에 이르른 길을.


* 샛별: 김진경 시인의 딸 이름. 그가 집에서 체포된 날 아침에 쓴 시.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솔섬                                      황지우


솔섬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읍내 `나그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ꡒ집은 어디서 왔다요?ꡓ 성도 이름도 없는 여자가 묻는다.

ꡒ수상해?ꡓ ꡒ북에서 내려왔어.ꡓ

그녀가 나를 꼬집는다.

ꡒ너는 어디서 왔냐?ꡓ

여수에서 영등포로, 미아리에서  부산으로, 목포로, 완도로, 해남으로 왔다,  그녀는. 대흥사 여관동네에서 한 2년?, 있다 장터까지 왔다, 그녀는.

ꡒ너도 끝장까지 왔구나.ꡓ

ꡒ아저씨는 눈이 내 애인 닮았소잉.ꡓ

ꡒ뭐 하는 놈인데?ꡓ

ꡒ중.ꡓ

밤늦게까지 그는 그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따라주고 암자로 올라가곤 했다, 그 중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색(色)이 탱탱할 때, 그는 통도사(通道寺)로 가버렸다, 그  중은. 그녀는  광주 공용터미날까지 가서 배웅했다, 그녀는. 슬픈 가을 산으로 돌아왔다.

ꡒ내가 환속한 그 중놈이야, 내가.ꡓ 쓰게 웃는다, 그녀가.

그녀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못생기고 늙은 이 작은 여자를 나는 넓은 가슴에 묻는다.

ꡒ집은 어디 간다요?ꡓ

ꡒ어란.ꡓ

ꡒ어란 어디?ꡓ

ꡒ솔섬.ꡓ

ꡒ거기 누가 있소?ꡓ

ꡒ아냐, 아무도 살지 않아.ꡓ

횃대로 올라가는 닭, 그녀는 이내 잠이 든다.

1983년 12월 24일, 나는 지상에서 한 여자를 재웠다.

첫 미사를 알리는 천주교  종소리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없었다. 2만 원만 챙기고  내 호주머니에 3만 원을 넣어두고 간 그녀의 발자욱을 금세 눈이 지우고 있었다.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나그네의 집'을 나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수기를 흔들며                             황지우


수기(手旗)를 흔들며


일간지(日刊紙)에 콩나물을 싸들고

아내가 우리 생애(生涯)의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온다

가난한 거주지의 긴 주소를 찾아

(그래 그래 주소가 길면 가난한 사람이다)

일기예보를 보는 식구들에게

길림성(吉林省) 옛 갈대밭에서

입에 손 모으고 호명(呼名)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흰 깃발이 오르고

다가갈 수 없는 대안(對岸)으로

물은 흘러도 영원히 닿지 않는

연해주에서 신림(新林) 산육동(山六洞)까지

보이지 않는 눈․비․바람의

보이는 선(線)을 따라

흰 깃발이 펄럭인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고

외몽고로 또다시 유민(流民)들이 떠나간다

떠나고 없는 빈

등고선에 내리는 흰눈

을 아내가 마당에서

대신 맞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수평선                                    황지우


수평선(水平線)&


□ 1


물 냄새를 맡은 낙타, 울음,

내가 더 목마르다.

이 괴로움 식혀다오. 네 코에 닿는

수평선(水平線)을 나는 볼 수가 없다.


□ 2


시리아 사막에 떨어지는, 식은 석양.

낙타가 긴 목을 늘어뜨려

붉은 천도(天桃)를 따먹는다.

비단 길이여,

욕망이 길을 만들어놓았구나.

끝없어라, 끝없어라.

나로부터 갈래갈래 뻗어나갔다가

내 등뒤에 어느새 와 있는 이 길은.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황지우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 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

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스

러워…….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

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랭이

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

그래서 나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쉬어 가는 곳                              황지우


쉬어 가는 곳


내가 여름 나라 아래 당도하니

식영정(息影亭) 온 채가

저 아래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노인들이 큰 나무 수령(樹齡) 아래에서

배꼽을 내놓고

손으로 부채질한다

멀리 무등산 동쪽 산록이

군용 담요를 뒤집어 씌워 놓은 듯

한낮 햇살 받아 더욱더 녹록(綠綠)하다

모든 길은 노인만이 안다

금곡(金谷)으로 들어가는 버스 이정표

코카콜라 간판 아래

이따만한 웬 누렁 개 한마리가

섬찌ㅅ하게 홀로 앉아 있다

너 이노오옴!

헛것이 수작을 부리다니!

돌멩이가 한여름의 으스스한 정물(靜物)을

깨겡껭, 깨뜨려 놓는다

녹은 아스팔트에 발자욱 남기며

헛것이 쩔뚝쩔뚝 사라진다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심인                                      황지우


심인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 - 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

돌아와서 이야기하자

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

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와라

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아내의 편지                               황지우


아내의 편지


  미숙아

  잘 지냈니? 너의 출산 속식을  기다렸지만 편지 길도 끊겨 몹시 궁금했다. 거의 두 달이 다되어가는데 아이는 잘 크는지?

  그리고 광주엔 너무나 아픈 일들이 있어 혹시 동생 승철이라도  다치지 않았는지 빠른 생각이 미치는구나. 5월과  6월이 한 장에 담긴 달력에  이제 모든 괴로움의 순간들이 모질게  조금씩정리되어간다. 5월의 그날들, 화염  속의 내 고향 광주. 비 내리는 뜰에 붉게  피어 있는 장미꽃이저주스럽고, 기독교 방송은 종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려주었다.

  휴교기간중에 애 키우기에는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겠구나. 네 집주소를 잃어버려 이렇게학교로 띄운다만, 미덥지 않아서 말이 자꾸 끊어진다. 이해해라.

  애 아빠는 들어가 있다.  오늘이 한 달째다. 성북(成北)을 다녀오면서 버스 속에서 조용필의`창 밖의 여자'를 듣는다. 차창 밖으로는 또 비가 내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저 거리가, 이 세상이, 내가, 모두 물에 잠겨버렸으면! 내 마음이 사나워진다.

  그이는 며칠 후면 다른 곳으로 이송될 모양이다.

  우리 아이들은 잘 큰다. 다섯 살 짜리 큰애는 개구장이다.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슬퍼서 울면 엄마 눈 아파? 하고  내 얼굴 전체에 다가온다. 여동생 우유를 빼앗아 먹고 그  대신 끔찍히도제 동생을 귀여워한다. 제 아빠를 만나고  온 후로는 내 앞에서 일체 아빠를 찾지 않는다. 아이들이 먼저 비극을 알아버린 것 같아서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그렇지만, 73년 가을 그가 동대문에서서대문으로 갈 때 그때보다 더 내가 침착할 수 있는 게 이 두 아이들 때문인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에서 스물아홉에 이르는 시간 전부가 그에게 속해버린 지금. 혁대를 풀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심한 상처를  입은 듯 다리를 절고 있는 그이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콱 막혔다.내 살이 그이의 살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는, 단속반에 쫓겨  리어카를 끌고 달리는 노점상들의 얼굴과만났다. 저분들은, 그렇다, 지금 나보다 더 위급하다. 몇 포기의 상추를 따와 길모퉁이에 자리잡은할머니는 급히 도망가는 리어카에 치여 발목을 다친다. 그렇다,  나는 그분들께 미안하다. 지금 내가 아픈 것은  나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다. 다친 할머니의  발목으로 집까지 걸어오는 사이, 이제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보이지 않는 데서도 아이들 우는 소리를  들을 수있게 되었다. 어서 가자,  주둥이 벌리고 있는 나의 제비새끼들에게. 주인 없는 집에서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상추쌈을 해 주었다.

  오늘은 너무 내  이야기만 했구나. 미안하다. 부엌에 가서 연탄 갈고, 또  혼자 울고, 그래서몇 번씩 끊긴 글이다. 그러나 너한테 이렇게 씀으로 해서 나는 이미 다 위로받은 것 같다.

  5월에  태어난 너의 아가에게, 의(義)에 굶주린 우리나라  모든 사람의 축복을 전하고 싶다.생각나니? 우리가 하얀  하복을 입고 지산동(芝山洞) 아카시아 숲길을 걷던  때. 넌 유난히 잘 웃고, 웃으면  염소처럼 빨간 잇몸이  다 드러났었지. 늦게  간 시집이니까 남편  사랑 많이 받겠구나.

  여느 때  같으면 술꾼들의 싸움 소리가 요란할 텐데  오늘밤은 이 신림이 고요하기만 하다.언제 우리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버리자.

                                                                               6월 28일

                                                                        너의 숙희로부터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어디로 가면 개마고원이 나오는 거유?       황지우


어디로 가면 개마고원이 나오는 거유?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미 국방성의 한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미군은 태평양지역에 21개의 핵지뢰(ADM)를 보유하고있는데 대부분이 한국의 비무장지대  일대에 배치되어 있다고 3일 워싱턴 포스트지에 게재된 `잭앤더슨' 칼럼이 주장했다.

ꡒ자 봐라. 우리는 이런 것도 말할 수 있다.ꡓ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말없이 듣는다, 침묵의 고성방가(高聲放歌).

그대는 사랑의 50가지 유언비어(流言蜚語)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나?

광화문 지하도에서 웬 실성한 여자가 나에게 길을 묻는다.

어디로 가면 개마고원이 나오는 거유?

어머니, 전 영세민의 아들입니다.

버섯구름 낀 서울을 떠날 수도 없어요.

우리는 이산가족이어요. 빤히 보이는 거리를 두고

해골이 되는 50가지의 길.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어머니                                    황지우


어머니&


저를 이, 시간 속으로 들여넣어주시고

당신을 생각하면 늘, 시간이 없던 분


틀니를 하시느라

치과에 다녀오신 직후의,

이를 몽땅 뺀

시간의 끔찍한 모습

당신은 그 모습이 미안하시었던지

자꾸 나를 피하시었으나

아니, 우리 어머니가 저리 되시다니!

목구멍에까지 차오른 술처럼

넘치려는 시간이 컥, 눈물 되네


안방에서 당신은 거울을 피하시고

나는 눈물을 안 보이려고 등을 돌리고


흑백 텔레비전 시절 어느 연속극에서

최불암씨가 늙으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ꡒ어머니, 왜 이리 가벼워지셨어요?ꡓ 하고

역정내듯 말할 때도 바보같이

막 울어버린 적 있지


저에게 이, 시간을 주시었으되

저와 함께 어느덧

시간이 있는 분

아직은 저와 당신, 은밀한 것이 있어

아내 몰래 더 드리는 용돈에 대하여

당신 스스로 제 앞에서 애써 기뻐하시지만

그러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있을까


연립주택 붉은 벽돌벽에 그늘을 옮기는 흰 목련,

그 테두리를 저는 오래오래 보고 있어요


현대문학, 1991.5






여정                                      황지우


여정(旅程)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완도 무선국에서  걸려온 시외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새벽길을 나선다. 새벽  겨울 바다 바람의 잡음(雜音)과  부음(訃音)이 짬뽕이 된 수화기속에 하라부지가, 윙윙,  하라부지가 도라가셔쓰ㅇ께, 윙윙, 느그 미국  성님한테, 윙윙, 전화하고, 윙윙, 빨리

        택시로 강남 터미날까지

        고속버스로 광주까지

        직행버스로 해남까지

        통통배로 전라남도(全羅南道) 완도군(莞島郡)에 부속된 섬까지

갈수록 길은 점점  좌우(左右)가 오므라들고 상하(上下)가 험했다. 상류(上流)로  거슬러올라갈수록,

   상가(喪家)는 잔칫집이었다. 일흔 가호 앞뒤 섬사람들이 일당육칠(一當六七)의 전식구(全食口)를 몰고 와 4박 5일  장(葬)을 지냈다. 에미들이 따라온 새끼들에게 입이 찢어지든 말든 한 볼때기씩 고깃점을  밀어넣어주면 아이들은 뭔갈  움켜쥐고 뒤안으로  게처럼 잽싸게 빠져나간다. 사내들은 천막 밑으로 들어와, 가신  그 양반, 복인(福人)이셔 복인(福人), 한마디씩 거들고 앉는다.

  부정기적으로 곡(哭)을 하고 나온 큰어머니도 이 상 저 상 돌아다니며 이것 놔라 저것 놔라얼굴에 희색(喜色)을 숨기지  못한다. 저노무 영감뗑이 빨리 디져부러쓰믄, 소리치던  그녀는 기쁘다. 뭍으로 나간 일가붙이들이 속속히  들어오고, 목포 작은고모 일금 이십만(貳拾萬) 원, 부산 첫째 작은아버지 일금 삼십만(參拾萬) 원, 광주  큰형님 일금 오십만(五拾萬) 원, 서울 선자 누님 일금 일십만(壹拾萬) 원,  엘에이 작은형님 일금 삼십만(參拾萬) 원이 들어오고,  돼지 다섯 마리 잡고, 소주 열 박스를 풀어놓았으니 큰어머니는 오지다. 한편으로  섬사람들 앞의 생색(生色)과 과시(誇示), 베푼다는 생각으로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 뭍사람들 앞의 상대적 빈곤과 `없이 살았다'는자기 서러움으로 영전(靈前)에서 원껏 울 수 있는 기회가 만족스럽다. 해남 고모와 둘째 작은어머니, 종형수는 입 꾹 다물고 부엌과 구정물통 사이만 오고간다.

  사람이  죽고, 또 울고불고 해도, 한 사람의  죽음을 치어내는 일 역시 살아  있는 사람들의살아가는 공동행사(共同行事)였다. 한  구멍의 성기(性器)의 공동체(共同體)에서 빠져나왔어도,  그러나 제각기 뻗어나간 삶의 `꼬락서니'는 천양지간이다. 사촌 팔촌끼리 미국에서 온 아이들과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섬에서 자란 아이들은 뭔가 상호  적대적이다. 어느 놈은 냄새 난다고 밥도 먹질 않는다.

  이윽고 계꾼들 삼봉치는 소리도 잦아들고, 마당의 모닥불도 가물거리고 한차례 음복도 끝나고, 첫물 빠지는  소리만 우울하게 들릴 즈음, 할아버지 죽음보다  더 깊은 수렁의 슬픔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분빠이한다. 슬픈 섬이 슬픈 섬끼리 그믐달 그늘을 늘이며 대열을 짓는다.

  목포 고모는 남편이 사우디  나가고 자식들이 선창 불량아들과 어울려 속썩는다. 부산 작은아버지는 어물(魚物)  거간꾼이다. 객지에서 식구도 많고  살기가 팍팍하다. 자꾸 빽이있어야 한다고, 집안에 판검사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서울서 공부 많이 했으면 뭔가 해야지 않느냐고 한다. 학원 선생인 광주 형님도  과외 금지 바람에 쫄딱 망했다. 서울 누님은 보험회사 외판사원이다. 목표 달성액이 1억 원이라며  생명보험 하나쯤 들라고 한다. 간호원인 형수를 앞세우고미국 간 작은 형님은 한인가(韓人街)에서  페인트상(商)을 한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뻑적지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뭔가  붙들려고 바퉁거리는, 그러나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안간힘이다. 그러나 안간힘도 힘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당신(當身)들은 손에 물 안  묻히고 산다는점이다. 큰어머니가 다시 훌쩍거리고,  둘째 작은아버지는 등을 돌려앉고, 해남 고모는  역시 말이없다. 잠시 사람들은  썰물과 밀물이 뒤바뀌는 소리를 듣는다. 드는  물살이 해우 발대 사이로 빈배를  뜨게 한다.  이 섬을  뜨라고  누가 말한다.  타고나기를 뱃사람으로  태어난  종손(宗孫), 경식 형님이 버럭, 꽥, 소리를 지른다. 이 오살할 놈의 섬을 떠나려도 빚으로 묶여 있다고, 겨울내 쎄빠지게 해우를 만들어도  여름에는 다시 빚내어 산다고, 목포나 광주 사람들의 빚으로 몽땅 꼴아박는다고,

  이튿날, 바람 없고 맑고 찬 아침, 한 채의 꽃상여를  짓고 앞바다 솔섬으로 사람들은 건너갔다. 여인들은 물가에 남아 울었다. 섬의 부족한 흙으로 할아버지를 묻고 사람들은 돌아갔다.

        통통배로

        직행버스로

        고속버스로

        택시로

        혹은 비행기로

  모두들 일이 밀렸다고, 목포로, 광주로, 부산으로, 혹은 서울로, 혹은 엘에이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연혁                                      황지우


연혁(沿革)


섣달 스무 아흐레  어머니는 시루떡을 던져 앞바다의  흩어진 물결들을 달래었습니다. 이튿날내내 청태(靑苔)밭 가득히 찬비가  몰려왔습니다. 저희는 우기(雨期)의 처마 밑을 바라볼 뿐 가난은 저희의 어떤 관례와도 같았습니다. 만조(滿潮)를 이룬 저의 가슴이 무장무장 숨가빠하면서 무명옷이 젖은 저희  일가(一家)의 심한 살냄새를 맡았습니다. 빠른 물살들이 토방문(土房門)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저희는 낮은 연안(沿岸)에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근경(近景)에서 이름 없이 섬들이 멀어지고 늦게 떠난 목선(木船)들이  그 사이에 오락가락했습니다. 저는 바다로 가는 대신 뒤안 장독의 작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빈 항아리마다 저의 아버님이 떠나신  솔섬 새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물 건너 어느  계곡이 깊어가는지 차라리 귀를 막으면 남만(南灣)의 멀어져가는 섬들이 세차게 울고울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붙들었고 내지(內地)에는  다시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럴수록 근시(近視)의 겨울 바다는 눈부신  저의 눈시울에서 여위어갔습니다. 아버님이 끌려가신 날도 나루터 물결이 저렇듯 잠잠했습니다.  물가에 서면 가끔 지친 물새떼가 저의 어지러운  무릎까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느 외딴  물나라에서 흘러들어온 흰 상여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꽃 속이너무나 환하여 저는  빨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언뜻언뜻  어머니가 잠든 태몽(胎夢)중에 아버님이드나드시는 것이 보였고  저는 석화(石花)밭을 넘어가 인광(燐光)의  밤바다에 몰래 그물을 넣었습니다. 아버님을 태운 상여꽃이 끝없이 끝없이 새벽물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삭망(朔望)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러나 바람 속은 저의 사후(死後)처럼 더 이상 바람 소리가나지 않고 목선(木船)들이 빈 채로 돌아왔습니다. 해초 냄새를 피하여 새들이 저의 무릎에서 뭍으로 날아갔습니다. 물가 사람들은  머리띠의 흰 천을 따라 내지(內地)로 가고  여인들은 환생(還生)을 위해 저 우기(雨期)의 청태(靑苔)밭  넘어 재배삼배(再拜三拜) 흰떡을 던졌습니다. 저는 괴로워하는 바다의 내심(內心)으로 내려가 땅에 붙어 괴로워하는 모든 물풀들을 뜯어 올렸습니다.

내륙(內陸)에 어느 나라가 망하고 그 대신 자욱한  앞바다에 때아닌 배추꽃들이 떠올랐습니다.먼 훗날 제가 그물을 내린 자궁(子宮)에서  인광(燐光)의 항아리를 건져올 사람은 누구일까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오늘날, 잠언의 바다 위를 나는             황지우


오늘날, 잠언(箴言)의 바다 위를 나는


그 새는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자기를 매질하여 일생일대(一生一代)의 물  위를 날아가는그 새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연안(沿岸)으로 가고 있다.


餠煎こすシ觀壙  봄 ― 나무에로, 민음사, 1985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황지우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원제 :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


              `벽․4'


    `1984년은 쥐띠 해이다'


  `재앙의 날들이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다오'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윤상원로                                  황지우


윤상원로(尹常源路)


사식집이 즐비한 을지로 3가, 네거리에서

나는 사막을 체험한다.

여러 갈래 길, 어디로 갈 테냐,

을지로를 다 가면

어느 날 윤상원로(尹常源路)가 나타나리라.

사랑하는 이여,

이 길은 대상(隊商)이 가던 비단길이 아니다.

살아서, 여럿이, 가자.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잠든 식구들을 보며                        황지우


잠든 식구들을 보며


  아내는 티.비를 켠 채로 잠들어 있다.

  마지막 뉴스 보도, 24시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한미(韓美) 장병 15명을 태운 헬기(機),

  `합동군사훈련중 동해(東海)에 침몰.'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없었다.  `구공화당(舊共和黨)인사 국민당 입당의사(入黨意思)표시.' 아무 일도 없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정신대(挺身隊)할머니태국서40년만에나타나.'  없었다. 오늘은,  없었다.

  오늘은, `탈영병(脫營兵)1명생포(生捕)1명은자살(自殺).' 없었다, 아무 일도,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내를 열광시키는 해태 타이거즈팀이 참패했어도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내는 티.비를 켠 채로, 아직도 티.비 속에서 잠들어 있다.

  김숙희, 십여년 전 영치금을 넣어주고 간 중산층(中産層)의 딸,

  나는, 내가 부르조아가 되는 것을 한사코 두려워했다.

  잘못 내려온 선녀. 철없는 부르조아.

  나는 너의 온몸에 가난의 문신(文身)을 그려놓았다.

  나의 욕망이 낳은 두 아이들을 양팔에 안고

  너는 이 세상에 자고 있는, 그러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

  아이들을 안고 승천하는 그대가 이 지상에 드리운 옷자락 끝

                   질긴 인연이구나.

  양자강(揚子江)  일대에서 밤새 동진(東進)하는 저기압권 가장자리에서 흔들리고있다.

                   놓아라. 아이들은 무고(無辜)하다.

                           이미 그대의 복강(腹腔)을 떠난 아이들.

  잠든 어린것들을 한밤중에 내려다보고 있으면

  눈물난다. 그들 앞에 놓인 번개치는 바다,

                           어떻게 건너가려 하느냐?

                                        환란의 날들,

            삶과 죽음의 고온다습한 협곡(峽谷)을 지나.

  이 무후한 애벌레들이 깨고 나올 세상, 그 입구에서 맞는 옥문(獄門)이여.

  어머니,  어머니,  생각납니다.

  당신이 울면서 문 열고 나간 접견실이.

  내 마음에는 아직도 문이 안 닫히고

  이 모두가 인질입니다. 당신도, 제 새끼들도.

  인질극을 벌이는 탈영병들을 핸드 마이크로 불러내는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돌아가세요!

  이 질긴 몹쓸 핏줄을 어떻게 끊어버릴까?

         이 웬수놈아 어쩌자고 이 짓을 저질렀느냐, 어쩌자고?

                    어서 나와라!

  `백기앞에서라!'                    목숨은 살아야제!

  `항복하라!'         어서 나와라!        너무 늦었어요.

                     어서 나와!       끝장예요, 어머니,

  어머니, 그러나 당신이 사금파리 젖가슴을 찍던 젊은날,

  그 끝장을 뚫고 갔던 여인이 돌아왔습니다.

  1KM를 나라비 서서 범한, 무참한 사타구니.

  일식(日蝕)의 남지나해여, 해일(海溢)이여,

                                 삼켜다오.

            해도 달도 뜨지 않는, 맹목의 40년, 아 40년!

  부끄러워 돌아갈 수가 없는 땅. 그녀가 버린 땅, 그녀가 잊은 땅.

  끝끝내 용서할 수 없는, 더러운, 더러운, 더러운 땅.

  이 역사는 반성하지 않았다. 참회하지 않는다. 개전(改悛)의 정도 없이

  선고유예된 세월. 용서받지 못. 어떻게 그 새끼가 또 나오나?

  털갈이하는 개.       그래, 그래, 잘못은 개인에게 있지 않아.

  바뀐 주인에게 찾아가는 개.       아아, 이제는 성 안으로,

  내 발자취를 냄새 맡고 쫓아오는 개. 이제는 들어갈 수 없어.

  잠든 식구들이여. 내가 떠난 후, 나를 찾지 마라.

  곧 심판의 날이 오리라. 내 형제의 눈에 든 티를 회한의 눈물이

  몰아내리라, 형제들아, 다음에 올 세상을 믿어라, 티엔티 폭탄

  트럭을 몰고 달려간 회교도 청년, 화염 속의 내세(來世)로 갔다.

  우리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러나 조금씩조금씩 그곳으로

  가고 있다. 우리들 한평생을 지렛대로 하여 떠올리는 역사,

  우리가 통곡하며 맨주먹으로 치던 이 무표정한 바위 덩어리.

  숙희야, 너는 지금 이 돌 속의 캄캄한 잠을 자고 있구나.

  대뇌, C-Fibre 속의 너의 내세(來世), 도솔천을 산책하는가?

  내 친족의 그윽한 살냄새로 가득한 안방, 우리가 함께 순장(殉葬)된

  무덤 같다. 그러나 이 무덤 밖에는 오늘,

  양자강(揚子江) 밤바람이 불고

  유가족의 가슴을 쥐어뜯는 동해(東海), 파고 1.5M의 밤바다로부터

  전신에 불 켠 발동선(發動船) 한 척이 돌아오고 있다.

  쉬었다 갈 이 세상으로.

  숙희야, 이 세상은 어느 날, 우리가 그랬듯이

  네가 안고 있는  이 아이들을 소환할 것이다.

  역사는 이 미감아들을 또한 분노와 슬픔, 격정과 사랑으로

  감염시킬 것이다.

  내놓아라. 내려놓아라

  나는 두 아이들을 떼어놓고 두 팔을 아내의 가슴에

  포개어준다. 옻나무 관에 그대를 입관(入棺)하듯.

그리고 너와 나, 누구든 하나가 먼저 가겠지만

어느 날 네가 죽으면, 내 가슴 지하(地下) 수천 M에 너를 묻으리.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전령의 외로운 길                          황지우


전령의 외로운 길


꼭 10년 만에  옛날 근무하던 임진강(臨津江)을 가  보았다. 연대 앞 위병소에서 내려  버스가남긴 황토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10년 간의 외출을 마치고 막 귀대한  육군 병장 황병장이었다. 10년, 10년 간의 외출, 애인을 만나고 그 애인과 한 10년 늘어지게 살다가, 어유지리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포플라나무, 감리교 웨슬레이씨가 들어와서 지은 돌벽  교회, 산드기씀밧골로 가는  작전도로, 나는 문서 수발을  끝내고 돌아가는 그 전령의  외로운 길을 걸어갔다.능선에 옥수수밭이  쓰러지도록 무성하고,  강 건너 너도밤나무  숲이 있는민통선(民統線)까지. 불귀(不歸), 불귀(不歸)의 강, 임진강.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제1한강교에 날아든 갈매기                 황지우


제1한강교에 날아든 갈매기


  이름도 알 수 없는 간밤의 수많은 간이역들을 깨우고 달려온  목포발 보통열차가 막 철교를통과하여 용산역으로 들어가던 오늘 아침,

  그보다  빠른 속도로 그 옆을 먼저  비켜 달려간 성북행 전철이 러시아워대의 지하  서울로기어 들어가던 오늘 아침,

  그리고 신경질나게 느린 속도로 사육신 묘지 앞을  지나 밀리고 밀린 제1한강교로 들어서는오늘 아침,

  나는 보았다 출근길  시내버스 속에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얼굴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의둔부와 치골이, 치골과 둔부가,  둔부와 둔부가, 치골과 치골이 서로 곤두서게, 빽빽하게 맞닿은 사이에서

  나는 보았다

  제1한강교 철제 아치 사이로 날아든 갈매기 한 마리를  나는 보았다 보았는데

  서울역, 갈월동, 남영동, 미8군 본부 앞에서부터 노량진까지 차량이 밀려 있는

  인내와 순종과 관용과 무관심과 체념과 적응력의 이 긴 대열 속에서

  이 연체의 시간 속에서

  일천구백오십년 북으로부터 남하하기 시작한 피난민들과

  일천구백육십일년 남으로부터 북상했던 해병 제공공 사단 병력들이

  내려오고 올라갔던 제1한강교, 철제 아치 위를 유유히 지나 동부이촌동과 반포 아파트 쪽으로 가고 있는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는데, 나는 그것이

  꼭 그의 죽음의 자기 예고의 풍향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저도 먹고 살려고 바둥대다보니까 여기까지 왔겠지, 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는 잘못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잘못 날아 왔었다

    그는 잘못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잘못 날아 왔었다

  아, 이렇게 정지된 순간에, 제1한강교에서 반포 아파트 쪽으로 바라본 한강은

  얼핏 보면 바다 같고

  자세히 보면 사이비 바다다

  장산곶, 백령도, 용기포, 대청도, 장자도, 소연평도, 주문도, 교동도……

  혹은 어청도, 궁시도, 흑도, 가덕도, 백아도, 선미도, 소야도, 장봉도……

  혜화동 영세 출판사 사무실에 붙은 백만분지일 우리 나라 지도에서 나는 그의 해도(海圖)를찾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종로, 어느 분식점에서...                  황지우


종로, 어느 분식점에서...


원제 : 종로, 어느 분식점에서 아우와 점심을 하며


국수 두 그릇과 다꾸왕 한 접시를 놓고

그대와 마주앉아 있으니

아우여, 20년 전 우리가 주린 배로 헤매던

서방 고새기 마을 빈 배추밭이 나타나는구나

추수가 수탈이었음을, 상실이었음을 그때 우리는 몰랐어도

다 거두어간 뒤의 허한 밭이 우리에게는 더한 풍요였다

내 입으로 벗긴 배추 등걸을 어린 그대에게 먹일 수 있었다

그대가 곱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경계가 있고

찬 저녁 노을이 우리를 몰아낼 때까지 거기가

할퀸 우리 땅임을 몰랐으므로

아우여, 이농의 허천난 후예로서 우리는

가시 돋친 탱자나무 울타리 안을 노려보며

땅강아지같이 살아왔다

거지와 도둑이 사는 마을, 닐니리 동네와 철로변 하꼬방촌을

전전하며, 땅 바깥으로 삶을 내동댕이치는 울타리가

도둑질이며 도둑질을 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어느새 내가 울타리 안에 있음을

아까 악수하는 그대 손바닥이 알려준다

울타리를 치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나간 아우여

국수를 한입에 몰아넣는 그대 앞에

나의 허기가 사기라는 것을,

아 어쩌다가 내가 시인이 되었을까,

국수와 설움과 쫓겨난 땅을 노래하는 일까지 극치의 사치라는 것을

아우여, 용사여,

두려워서 자백하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나간 길과 다른 나의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통로, 나의 길

나는 늘 경계에 있었다

대구와 양산, 김해 혹은 영등포에서 빡빡 깎은 그대 머리를

대했을 때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게 나에 대한 그대의 면책은

아니었다 면책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계가

나의 에펜네, 새끼들, 그리고 그대와 나의 어머님, 지금도

해남에서 땅에 코를 박고 살아가고 있는 형님과

나 사이에도 있다 나의 분노는 슬픔을 지나온 것이다

나는 뚫고 가야 하리라

내 등을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그대가 먼저 떠나라

우리는 다꾸왕은 한 입도 대지 않았구나

빈 국수 그릇에, 그대와 나의 새벽 공복을

울리고 가던 송정리행 기적 소리


餠煎こすシ觀壙  봄―나무에로, 민음사, 1985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황지우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내가 먼저 대접(待接)받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러나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대안(對岸)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지복한 틈                                 황지우


지복한 틈


  비 오는 날이면,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우리는 하염없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젤 좋아하는 노래는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는 동요이다.

  그  방주(方舟) 속의 권태롭고 지겨운 시절이,  이제는 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지복한 틈이었다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라. 화엄(華嚴)의 넓은 세상.

  들어가도, 들어가도, 가지고 나올 게 없는

  액체의 나라.

  나의 오물(汚物)을 지우는, 마침내 나를 지우는 바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초로와 같이                               황지우


초로(草露)와 같이


오 환생(幻生)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누선(淚腺)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파란만장                                  황지우


파란만장


율도국에 가고 싶다

내 흉곽의 강안(江岸)을 깎는

파란만장(波瀾萬丈)

물결 하나가

수만 겹의 물결을 데리고 와서

나의 애간장 다 녹이는

조이고 쪼이는

내 몸뚱아리 빨래가 되고

오 빨래처럼

시신(屍身)으로 떠내려가도

저 율도국으로 흘러가고 싶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표적                                      황지우


표적


보이지, 꼬리치는 미끼?

속으면 너, 죽어.


먹이 속에 든 갈쿠리  : 밥상 위의 갈치 속에서 물음표(?)를  젓가락으로 끄집어내다. 피 묻은실에 딸려나온 식욕.


중산층은 곧 배반할 거야. 혐오감은 곧 지나가.

수술한 처녀막에 난 고속도로. 부산(釜山)은 진창이야.


실업 불황 강요하는 미일 자본 몰아내자!

침묵하는 자는 부역자다.


난 알았지, 네가 누군지.

내 혈관에서  `헌혈'이라는 이름으로,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채혈(採血)하는 너.


우리나라 똥구멍을 타고 흐르는 낙동강.

그리고 낙동강은 똥물이 되어 고요히 쓰시마 해협으로 흘러간다.


그는 하루에 일만 번 에어 드라이버 버튼을 누른다.

그들은 그를 가난해야 일을 하려 드는 족속이라고 부른다.


`초과 이윤'을 그들은 `자본의 연금술'이라 부르기도 하며,

자동화 사격장 표적처럼 불쑥불쑥 일어선다.


그러나 신분증 없이는 한 구간도 지나갈 수 없는 거리.

병정 개미들이 날개 달린 곤충의 목을 끊어놓는다.


젊음이 죄야. 젊은 놈들은 모두 용의자야.

지하도에서 가는 길을 묻는 자에게 새점(占)을 쳐주는 늙은 예언자.


불 꺼! 1309호 불 안 끌 거야? 시발년아 불 안 끌래? 방위병이

가게  문짝을   발로  걷어찬다.  먹구름  밑   항공로를  긴  혀로  핥는   탐조등(探照燈).


어린 시절 참새집에 들이댄 후라쉬, 아 새들도 잠을 자는구나!

까만 작은 눈을 뜬 채 끌려나오는 일가족.


그대들은 아버지 없는 세대, 후레자식들이다.

내가 아버지가 되다니.


내 좆으로부터 태어난 미래여, 덤벼라, 나에게!

우주선이 전송(電送)한 지구사진. 하염없이, 잎이 피고 눈 내린다. 사람들이 산다.


검은 라이방 안경을 쓴 박정희소장(朴正熙少將)이 강을 건넌다.

덴노이까 반자이! 도스께끼! 앞으로 갈수록 뒤로 `빠꾸'하는 수레바퀴를 타고,


그들은 왔다. 한강에서 북악까지, 생각해보면 1밀리미터도 안 되는 그 길.

강제 추행이었어. 그 세월 넘도록 삶은 수치심이야.


그대,  보았어?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대기권으로  들어오는  꽃다운  유성(流星)을.

아아 역사여, 뇌성번개여, 피뢰침 밑으로 들어간 자를 쳐라!


나를 쳐라! 나를 먼저 쳐다오! 금간 하늘이 드러내는 두려워하는 얼굴.

내 마음이 만든 이 두려움을 박살내다오!


망월(望月)로 가는 길. 그 황톳길. 묘비도 팻말도 없는 무덤에게 가는 길.

이제 참회하지 말고 나가 싸우라! 돌아오는 그 길은 그렇게 내게 말했다.


가자, 내 아픈 식구들아!

이 진창 속에서, 진창 속의 낙원으로.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호남의수족관                              황지우


호남의수족관(湖南義手足館)


점심 시간에 몰려나와 개고기를 먹는

뻘뻘,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가면서

저 뜨거운 불성(佛性)을 우그작우그작 먹어치우는

빤들빤들한 건강체(健康體)들이 내 눈에는, 허깨비 같다

허깨비 같다, 훅 불면 바슬바슬

진흙먼지 흩어지는


몸의 일부들이

전남대학(全南大學) 대학병원(大學病院) 로터리 한켠

호남의수족관(湖南義手足館) 유리 진열대에 놓여 있다

볼트로 관절을 연결한 플라스틱 다리들, 팔뚝들

그리고 자잘한 손금이며 퍼런 실핏줄하며

분홍빛 손톱의 흰 초승달까지

영락없이 `살아 있는' 사람 손 같은 살색 고무손,

전생대(前生代) 얼음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저기, 아직도 구멍 흔적이 남은 대학병원 붉은벽돌 앞

히말라야 소나무를 가리킨다, 가리키는 듯하다

링겔병을 꽂은 채 환자가 소나무 아래

휠체어에 앉아 있다

아, 아픈 사람만이, 실감(實感)난다, 사람 같다

비로소 사람에 가까워지려 저렇게 끙끙거리는

푸른 세로줄 무늬 환자복이 휠체어를 밀며

히말라야산(山)으로 가고 있는 사이

또 금남로(錦南路)에 대학생들이 나타났는지

십방(十方)으로부터 길이 방사선으로 들어오는 로터리,

꽉, 막혀 있다

목에 쇠가시가 걸린 듯

무쇠 말들이 차선(車線)에서 클랙슨 방귀, 빵빵거리면서

헛 시간(時間)을 뀐다

하루하루 삶이 그저 일상(日常)이지만

삶, 바로 그것이 시간성(時間性)이기 때문에


축 늘어진 사람을 업고 누군가 응급실 쪽으로 뛰어가고

호남의수족관(湖南義水足館) 건너편 보신탕집 앞

르망, 스텔라 들이 금덩어리 개새끼처럼

땡볕 아래 무릎을 꿇고 있다


都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1991






활엽수림에서                              황지우


활엽수림에서


1971년 : 4월 대통령 선거. 5월에 재수하러 상경. 광화문 뒷골목에 진치고 날마다 탁구나 당구치다.

1972년 : 대학  입학, 청량리 일대에서 하숙. 그해 여름,  어느 날, 혼자, 몰래, 588에서 동정을털고 약먹다. 약값을 친구들한테 뜯기도 하고  새 책을 팔기도 하다. 가을, 국회의사당 앞, 탱크가진주하고  학교 문  닫다. 새  헌법 선포되다.  추운 다다미방에서  겨울 내내  신음하다. 독(毒)이 전신에 번지는 꿈에서 화다닥 깨어나기도 하고, 가끔 인천  방면으로 나가 서해 갯벌에서 고은시집(高銀詩集) 읽다.

1973년 : 동숭동 개나리꽃  소주병에 꽂고 우리의 위도(緯度) 위로 봄이 후딱 지나간  것을 추도하다. 가정교사 때려치우다.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다. 여자를 만났다 헤어지고, 그때 홍표․성복이․석희․도연이․정환이․철이․형준이․성인이와 놀다. 그들과 함께,  스메타나, `몰다우강(江)'쏟아지는 학림(學林)다방, 목(木)계단에 오줌을 갈기거나, 지나가는 버스  세워놓고 욕지거리, 감자먹이기 등 발광(發狂)을 한다.  발정기(發精期), 그 긴 여름이 가다. 어디선가 머리카락타는 냄새가 나고,  어디선가 바람이 다가오는 듯,  예감의 공기를 인 마로니에,  은행나무숲 위로새들이 먼저 아우성치며 파닥거리다. 그때 생(生)을 어떤 사건,  어떤 우연, 어떤 소음에 떠맡기다.그 활엽수 아래로  생(生)이, 그 개 같은 생(生)이,  최루탄과 화염병이 강림하던 순간, 그  계절의성(城) 떠나다. 친구들 `아침이슬' `애국가' 부르며 차에 올라타다. 황금빛 잎들이 마저  평지에 지다.

1974년 : 홍표, 권행이, 오걸이, 종구,  해찬이, 내가 부르는 이름들 끝에 10년 12년, 세월의 긴꼬리표 달리다. 논산 훈련소 저지대에 엎드려 황토에 얼굴  묻고 흐느끼다. 땅에 고해성사(苦解聖事)하다. 그리고 따블빽 하나와 군번 하나로 미지의 임지를 향해 북상(北上)하다. 한탄강, 북위(北緯)  38도선(度線), 야산, 트럭 뒤 먼지가  그리는 작전도로, 공공 사단, 세모 연대, 네모  대대, 가위표 중대, 당구장표 소대, 말단  소총수 되다. 어린 소대장 구두 닦고, 탄약고 제초 작업, 비온  뒤 도로 보수 공사, 낫질 삽질, 임진강서 모래 채취,  담뿌차 타고 씀밧골서 흙 파고 중대 뒷산 호박 구덩이에  똥 푸고, 쎄멘 공구리 등에 지고 군자산 방카 공사, 식기 닦고 빨래하고……살다. 그냥 비인칭 주어로 살다. 이따금 서울서 여자가 면회 오고 그녀가 준돈으로 동두천서 지친 성기(性器)와 잠을 자기도 한다. 미군 캠프 부근을 하릴없이 서성이다 흑인병사에게 팔뚝으로 크게 말좆을 그려  보이며 낄낄거리기도 하고, 오후 늦게 귀대하다. 녹색이 서서히 갈색으로 옮겨가는 군자산, 갈색이  다시 회(灰)색으로 내려오는 산협(山峽), 으로몰려오는 첫눈, 맞으며 첫 휴가 나오다. (아,  환속하다)  ꡒ그 세상이, 먼저  건드렸어, 우리를.ꡓ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  말하다. ꡒ아냐, 세상을 저질러버렸어 우리가.ꡓ 우리들 중의 또  한 사람이 말한다.  그날 영화  `빠삐용' 보고 말없이  헤어진다. 생(生)을  탕진한 죄, 아무도  말 못  한다.

1975년 : 다시,  도연이 정환이 들어가다. 철이 석희한테 그런  편지 오다. 아직 `아무데도' 못간 그들에게 면죄부 띄우다. ꡒ너희는  살아남아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라.ꡓ 8월 부친 사망, 관보받다. 그날 수첩에 `또 한 사람 하역(荷役)'이라고 쓰다. 그해 겨울 GOP 철책으로 들어가다. 저쪽의 가장 따뜻한 쪽을 맞댄 이쪽의 가장 추운 경계에서 겨울 지내다.  새벽 기슭에 서서 부은 눈으로 눈덮인 산을 멩하게, 바라보다.

1976년 : 제대. 해군서 제대한 성복이와  그해 가을, 신림동서 술 마시며 죽치다. 「귀소(歸巢)의 새」쓰다.

1977년 : 다섯 번째로 만난  여자와 결혼하다. `무작정 살다.' 6개월 후 이 표류에 한  사람 더동승하다. 딸 낳다. 그때  도연이가 출감하다. 정환이, 해일이 출감하고 곧  동부전선으로 가다. 『문학(文學)과 지성(知性)』겨울호에  성복이 `시인'으로  혼자 떨어져나가고 석희,  군대에서 음독(毒) 자살 기도하다.

1978년 : ꡒ날 먼저 죽이고 나가라,  이놈아.ꡓ 어머니 울면서 말리다. 친(親)동생 끝내 광화문으로 나가다. 통대  99% 지지, 같은 사람을  9대 대통령으로 추대하다. 홍표 나와서  콤퓨터 회사취직하다. 출판사에, 수입 오퍼상에,  섬유 수출업에, 하나씩 둘씩 들어가다. 더러  결혼도 하고 그런 때나 가끔  서로 얼굴 보다. 생(生), 지리멸렬해지다.  그 생(生)의 먼데서 여공들 해고되고  한달에 한 번 대구로, 김해로, 동생 면회 가서 옷과 책 넣어주다.

1979년 : 대통령 죽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멀리서, 모두, 한꺼번에 돌아오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흔적 Ⅲ․1980 이영호작...                 황지우

출처 : 시인회의
글쓴이 : 초록잎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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