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

무비스님의 直指<111〉■ 서산 양 좌주 - 무엇인가?|*

시치 2011. 4. 16. 12:09

무비스님의 直指<111〉■ 서산 양 좌주 - 무엇인가?|* 直指 연재(불교신문)
文殊法供養會 | 조회 80 |추천 0 |2010.10.16. 18:54 http://cafe.daum.net/yumhwasil/8ROv/114 

마음은 연극 ‘배우’이고 망상은 ‘관중’

〈111〉■ 서산 양 좌주

 - 무엇인가?

 

부르면 돌아볼 줄 아는 그 사실

“그대의 깨달음은 본래 그대 것”

 

西山亮座主 講得二十四經論 一日 去訪馬祖 祖問曰 聞說 大德 甚講得經論 是否 主云 不敢 祖曰將甚講 主云 將心講 祖曰 心如工伎兒 意如和伎者 爭解講他經論 主云 心旣講不得 莫是虛空講得 祖曰 却是虛空講得 主拂袖而出 祖 召座主 主回首 祖曰是什 主 於是大悟 便伸謝 祖曰 者鈍根阿師 禮拜作甚 主 直得遍通身汗流 歸寺 謂衆曰 我一生功夫 將謂無人過得 今日被馬祖 一問 平生功夫 氷釋而已 後乃罷講 直入西山 杳無消息

 

서산 양 좌주가 24본의 경론을 강의하였는데 어느 날 마조 선사를 방문하였더니 마조 선사가 물었다.

“들으니 대덕이 경론을 매우 잘 강의한다하던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을 가지고 강의합니다.”

“마음은 연극을 하는 사람(工伎兒)과 같고 생각은 연극에 화답하는 사람(和伎者)과 같은데 어찌하여 경론을 강의할 줄 아는가?”

“마음이 이미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 허공이 강의하느니라.”

좌주가 옷을 휘날리며 나가버리거늘 마조 선사가 좌주를 부르니 좌주가 돌아보았다.

마조 선사가 “무엇인가?”라고 하였다.

좌주가 이에 크게 깨닫고 곧 바로 감사의 예배를 올렸다. 마조 선사가 말씀하였다.

“이 둔한 중이여, 예배는 왜하는가?”

좌주가 곧바로 온 몸에서 땀이 넘쳐흘렀다. 절에 돌아와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일생동안 공부한 것을 누구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오늘 마조 선사의 질문을 받고 평생 공부가 얼음이 녹듯이 녹아버렸다” 그 뒤 강의하는 것을 그만두고 바로 서산에 들어가서 묘연히 소식이 없었다.

 

해설 : 온갖 경론을 강의하는 강사와 마조 선사와의 대화다. 무슨 경론을 어떻게 강의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심의식(心意識)의 장난일 뿐이다. 심의식의 장난이란 중심의 표현이 아니고 표면과 주변의 놀이이다. 진정으로 경론을 강의한다면 중심의 울림이라야 한다. 심의식으로써 왈가왈부한다면 마조 선사의 안목에서 볼 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마음이 이미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한다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니, “그래, 허공이 강의하느니라”라고 하여 뒤틀린 말을 건넨 것이다. 그러자 강사는 화가 나서 옷깃을 휘날리며 나가버린다. 마조 선사는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사를 불러 일침을 가하여 눈을 열어준다. 즉 부르면 돌아볼 줄 아는 그 사실, “이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것이다. 강사는 그동안 온갖 경론과 숱한 경계에 팔려 다니다가 비로소 집으로 돌아오는 소식을 만난 것이다.

강사의 안목을 더욱 확실하게 한 것은 강사가 깨닫고 나서 감사의 예를 올리니까 “그대의 깨달음은 본래 그대의 것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세. 그런데 예배는 무엇 때문에 한단 말인가?”라고 한 뜻이다. 그 후 강사는 곧바로 서산에 들어가서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마음은 연극을 하는 사람(工伎兒)과 같고 생각은 연극에 화답하는 사람(和伎者)과 같다.”라는 말은 <능가경>의 글이다. 연극을 하는 사람이란 모든 연기자들이고 연극에 화답하는 사람이란 연극을 할 수 있게 무대를 꾸미고 의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참고로 경전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은 연극을 하는 사람과 같고 생각은 연극에 화답하는 사람과 같네. 전오식은 벗이 되고 망상은 연극을 보는 관중들이다(心如工伎兒 意如和伎者 五識爲伴侶 妄想看伎衆)”라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