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

겨울의 원근법/이장욱. 2010' 제3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시치 2010. 11. 22. 02:13

 

 2010' 제3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賞  수상시   

겨울의 원근법/이장욱 

 

  너는 누구일까?

  가까워서 안 보여.

 

  먼 눈송이와 가까운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나네.

  바위를 부수는 계란과 같이

  사자를 뒤쫓는 사슴과 같이

 

  근육질의 눈송이들

  허공은 꿈틀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네.

  너는 너무 가까워서

  너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는 없겠지만

 

  드디어 최초의 눈송이가 된다는 것

  점 점 점 떨어질수록

  유일한 핵심에 가까워진다는 것

  우리의 머리 위에 소리 없이 내린다는 것

 

  나는 너의 얼굴을 토막토막 기억해.

  네가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스쳐갔을 때

  혀를 삼킨 입과 외로운 코를 보았지.

  하지만 눈과 귀는 사라졌다.

  구두는 태웠던가?

 

  너는 사슴의 뿔과 같이 질주했네.

  계란의 속도로 부서졌네.

  뜨거운 이야기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가까운 눈송이와 먼 눈송이가 하나의 폭설을 이룰 때

 

  나는 겨울의 원근이 사라진 곳에서 너를 생각해.

  이제는 아무런 핵심을 가지지 않은

  사슴의 뿔이 무섭게 자라나는

  이 완전한 계절에 

 

 계간 『시와 세계』 2009년 겨울호 발표  

 

 이장욱 시인

1968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 노문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이 있고,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 이장욱의 현대시 읽기』가 있음. 2005년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제3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 현재 '천몽' 동인이며 조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中.

 

 

 

올해에도 역시 「올해의 좋은 시」수상시를 결정하는 심사는 매우 어려워

 추천시인들은 일단 자신들이 이해 가능한 작품들을 추천하는 경향이 강해

 

 

  '詩人들의 祝祭'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10 「올해의 좋은 시」수상시를 결정하는 심사는 매우 어려웠다.

  1000편 시에서 일차 100편의 시가 선정되고 다시 57명의 시인들이 투표로 선정한 10편의 작품이기에 외견상 객관성이 확보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올라온 작품들이 너무 보수적인 작품들이 선정되었다고 생각했다. 추천시인들은 일단 자신들이 이해 가능한 작품들을 추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참신한 사유와 개성을 보여준 작품들이 올라오지 못했다. 이 경향은 97명의 시인들의 추천에 의해 선정된 1차 100선 선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본심에 오른 열편 중 심사위원인 본인의 작품을 배제하고 나머지 9편을 대상으로 심사위원들이 3편씩 추천했다. 집계결과 2표를 받은 작품이 송재학의 「공중」, 심보선의「나날들」, 이장욱의 「겨울의 원근법」, 조용미의 「얼룩」이었다. 3표를 동시에 받은 작품이 안 나와서 다시 심사해야하는 고충이 있었다.

  송재학의 「공중」은 다른 문학상에서 이미 수상을 받은 사유로 인해 심보선의 「나날들」은 앞으로 더 지켜보자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으로 최종으로 조용미의「얼룩」과 이장욱의「겨울의 원근법」을 심사했다. 모두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들이라 평가가 어려웠다. 결국 심사위원 3명의 재 추천에서 다시 2표를 얻은 이장욱의 「겨울의 원근법」이「올해의 좋은 시」로 결정되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이 상의 기본취지는 다른 문학상과는 달리 현장시인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선정과정의 즐거움과 작품의 객관성을 시인들이 볼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을 좀 더 보완해서 정말로 ‘좋은시’들이 누락되지 않아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발생했다.

  2011 「올해의 좋은 시」賞은 시인들의 더 많은 참여로 객관성을 높이고 현장시인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되는 행사가 되도록 할 예정이다.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좋은 시」행사의 한 가지 장점은 원로와 중진, 신예의 시격詩格이 모두 같다는 점이다. 신인이라도 ‘좋은 시’로 동료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100選과 10選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고 다시 「올해의 좋은 시」상의 수상자가 될 수 있다.

  이제 이  행사가 시인들만이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시인들 모두가 하나되어 참여하는 축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웹(Web)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연중 내내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국내외서  유일한 싸이버(Cyber) 詩의 祝祭로서, 시단의 대표적인 행사중 하나가 되길 소망한다.  현장에서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는 신예와 중진 그리고 원로 시인들이 多數(다수)추천으로 선정하는 이 賞을 수상하는 시인은  公信力(공신력)으로 명예가 최고인 문학상을 수상하였음을 알려드린다. 

                                                                                                       김백겸 시인(웹진 시인광장 主幹)    

 
 
 

 

 선정 이유 

 

 

 

 '詩적 기하학'

 

  여러 시인들의 시편이 각자의 포스와 미학과 격을 고유하게 드러내면서 많은 동료 시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모두 열 편의 작품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많이 망설였지만, 궁극적으로 개개 시편의 우열(優劣)을 계량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이장욱 시편의 장점들을 추출하여 올해의 최우수 시편으로 뽑았다. 그의 작품 제목은 「겨울의 원근법」이었다.

  원래 ‘원근법(perspective)’이란 3차원을 2차원으로 붙들어 매는 작업이자, 어떤 한 시점에서 물체와 공간의 멀고 가까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도상(圖像)적 방법이다. 당연히 거기에 필요한 것은 일종의 ‘거리’ 감각이다. 멀고 가까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시선의 배치와 처리가 중요해진다. 언뜻 보아, 이장욱의 장기가 가능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폭설이 내리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는데, 더 정확히는 쏟아지는 “근육질의 눈송이들”이 꿈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점 점 점 흩어지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눈송이의 점멸 과정은 보임과 안 보임, 사라짐과 자라남, 가까움과 멂이 되어, 원근법으로 처리된 상상적 도상으로 모이고 있다. ‘가까운 눈송이’와 ‘먼 눈송이’가 결속하면 “완전한 이야기”가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는 “뜨거운 이야기”로 번져가면서 바위와 계란, 사자와 사슴의 강/약, 가해/피해 관계를 전도(顚倒)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구성된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준다. 너무 가까우면 안 보이던 것이, 너무 가까우면 “아름다운 이야기”도 지을 수 없던 것이, 사라짐의 잔상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계절”을 구성하고 ‘나’는 ‘너’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겨울의 원근이 사라지고 ‘너’를 생각하는 ‘나’는 자라나는 “사슴의 뿔”처럼, ‘너’에 대한 생각을 키우게 된다.

  이 시편은, 초기시부터 현실과 상상의 경계 자체를 시화하였던 이장욱이 가시와 불가시, 시간과 공간을 혼용하면서 단정하고 박진감 있는 호흡과 문체를 다시 한 번 보여준 우리 시대의 시적 기하학이 아닌가 한다. 이장욱은 우리 시대의, 거의 유일한 의미에서의, 다장르 작가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시인’이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우리의 시선이 너무 가까워 보지 못하는 것들을 새로운 원근법으로 배열하고 상상하는 그의 힘을 다시 만나면서, 그러길 더 바라게 되었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선정 이유   

 

 

 '상상력의 복잡성과 새로운 감수성'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것들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작품 가운데 단 한 편의 시를 선정하는 일은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0  '올해의 좋은 시'  1000편의 시들 가운데서 최종 본선에 올라온 10편의 시를 읽으며 이러한 마음이 앞섰던 것은 10편 가운데 어느 하나 쉽게 놓아버릴 수 없을 만큼 애착이 갔기 때문이다. 세 명의 심사위원 각자가 10편 가운데 3편을 고르고 그 가운데 두 표를 얻은 시는 이장욱의 「겨울의 원근법」, 조용미의 「얼룩」, 송재학의 「공중」, 심보선의 「나날들」이었으며 최종적으로 끝까지 논의되었던 것은 이장욱과 조용미의 시였다. 두 시인의 작품 모두 독자성과 깊이 면에서 손색이 없는 수작이라는 점에서 그 결정이 쉽지 않았음을 밝혀야 할 듯하다.

   논의 끝에 이장욱의 「겨울의 원근법」이 제3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수상시로 선정되었다. 이장욱 시의 매력은 상상력의 복잡성과 그 복잡성이 증폭시키는 문맥의 애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는 산문으로 명료하게 환원할 수 없는 언어의 충돌을 다채롭게 전개하면서 새로운 감수성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독자의 상상력을 긴장시키면서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애매한 새로움. 주목했던 것은 바로 그의 이 같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수성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의 원근법」은 이러한 이장욱 특유의 감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판단된다. 

                                                                                               엄경희(문학평론가, 숭실대 교수) 

     

 

 

 

 수상 소감 

 

 

 시 쓰기라는 ‘마의 산’에서

 

  토마스 만은 12년의 세월을 바쳐 『마의 산』을 완성한 뒤 이 작품을 “교육적 자기 훈련의 책”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교육’이나 ‘훈련’ 같은 단어에는 개인적으로 호감을 못 느끼는 편입니다만, 아마도 이 말은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작가 자신의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더 나아가게 하는 것, 어쩌면 모든 글쓰기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쓰는 사람이 글 속의 대상과 세계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반대가 아닐런지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무등산에 올라 광주 도심을 내려다볼 때가 있습니다. 모래처럼 빛들이 뿌려져 있습니다. 모래들은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모양을 이루었다가 점점이 꺼지기도 합니다. 저 빛들 하나하나가 외따로 떨어져 오롯이 자신의 것일 불안과 외로움과 희망을 품고 잠들 것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무수한 불완전함들에 저 자신을 맡기고 싶어집니다. 완전한 것들의 완전함에 숨구멍을 내어놓고, 불완전함의 불완전함을 보듬어 어느덧 신선한 꿈을 꾸고 싶어집니다.

  저는 이 賞을 여러 선배시인들과 동료시인들이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제 시와 글을 보면 민망하고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습니다만, 민망하고 붉어진 얼굴로라도 조금씩 더 나아가보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시 쓰기라는 ‘마의 산’에서, 저 자신이 조금씩 더 깊고 예민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이장욱 시인  

 

1968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 노문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이 있고,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 이장욱의 현대시 읽기』가 있음. 2005년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제3회 '문학수첩작가상' 수상. 현재 '천몽' 동인이며 조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