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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의 불꽃놀이/김백겸

시치 2010. 11. 21. 20:41

왕궁의 불꽃놀이/김백겸

 

  자목련 가지에서 꽃과 이파리들은 날아가려는 박새처럼 피었습니다. 자목련 꽃잎이 떨어지면서 꽃의 기운은 다른 세계로 날아갔습니다. 아스팔트에 죽은 지렁이 시체가 검은 빛을 내자 개미떼들이 저승사자처럼 몰려왔는데, 나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삼십 억 년 동안 긴 꿈을 꾸는 유전자들의 놀이세상에서 잠깐 꾼 내 꿈은 촛불에서 날아오르는 불티였습니다.

 

  검은 구름이 박쥐떼처럼 몰려왔습니다. 허공을 수술칼로 그어버리는 번개 불이 쳤습니다. 천둥이 공기를 태운 역한 냄새가 벌판의 소나무 숲으로 몰려왔습니다. 하늘을 태우는 불소리가 시간의 강에 흐르는 물살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내 목숨은 태양아래 숲을 돌아다니는 호랑나비였지만 불꽃이 꺼지면 계곡의 어둠으로 돌아가는 자목련 꽃잎이기도 했습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조릿대 숲으로 자란 침묵이 말했습니다. “너는 눈의 음악을 듣고 고해苦海와 화택火宅에서 마야의 악몽을 슬퍼한다. 언덕너머에서 교향악을 연주하는 지휘자는 화성和聲과 대위법代位法으로 생명음악을 연주한다. 무지개 색깔처럼 음계를 달리하여 연주하는「왕궁의 불꽃놀이」는 이 세상에서는 죽음이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생명의 서곡이다.”

 

  하늘의 은하수에서는 별들이 블랙홀 속에 사라지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습니다. 별들의 검은 에너지가 내 심장을 물들이고 붉은 맥박으로 흘러나갔습니다. 바위에서는 침묵이 샘물로 솟아나와 벌판을 지쳐 돌아갔습니다. 자목련 꽃 속에서 밤하늘의 별 같은 빛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음악이 꿈결처럼 사라지는 영원의 한 순간 속에 있었습니다.

 

 

 계간『미네르바』2009년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