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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 김혜순

시치 2010. 11. 19. 02:49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구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