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다시보기
메롱메롱 은주 / 김점용
시치
2010. 10. 30. 00:54
메롱메롱 은주 / 김점용
깊은 산 등산로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 손잡아 주느라 닳고 닳은 나무줄기의 반질반질한
맨살에 새겨진 글자 은주
나는 그것이 남몰래 사랑하는 한 여인의 이름인지 이파리를 죄다 몸속으로 숨긴 그 나무
의 이름인지 파란만장 푸른 잎물결 속에 숨은 빈 배의 이름인지 알 수가 없어 한참 동안 나
무 주위를 맴돌다 돌아왔는데
아무레도 그 나무는 어떤 사람과 눈이 맞아 죽어서 올라가든가 내려가든가 하는 중인 것
같은데 거기에 소 한 마리 매어서 딸려 보낸 주인이 누군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한 밤에 부엌 냉장고 돌아가는 소릴 들으며 이런저런 잡생각을 깔고 앉을 때나 강원도 깊
은 산골에 두꺼운 방석을 펴면 이따금 귓전에 울리는 소 방울 소리가 메롱메롱 은주, 하고
날 놀리는 것 같아 평생을 그렇게 놀림받으며 살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