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현대시학》신인작품공모 당선작 -워낭소리 (외 4편)/권혁찬
제22회 《현대시학》신인작품공모 당선작 _ 권혁찬
워낭소리—(지문리의 봄) 外 4편/권혁찬
그리고 5월, 다시 들판에 서 있다
수입소와 광우병 사이에서 네발 가진 모든 먹구름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더 식음을 전폐했고
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은 모두가 적막 속에서 기울어 갔다
봄이 오고 마을은 또다시 잠에서 깨어났지만
동네 미루나무와 낡고 위태로운 한우 우사는 두문불출 중이고
오래전 기억상실증을 따라간 후 돌아오지 않는 최 씨와
들판에 뿌리박힌 것들은 모두 몇 개의 이정표가 되었을 뿐
더는 이곳의 아침을 몇 줌 태양처럼 깨워주지는 못한다.
저녁이면 싸리문 안쪽으로 네발로 귀가하던 푸른 워낭소리,
그랬다.
마을은 한때, 보습의 날들이 주인이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수선해 주던 농기구들과
그들의 덜컹거리는 꿈들을 운반해 주던 고샅길들과
아침이면 부스럭, 건너오던 울타리 저쪽의 뜨끈한 안부가 있었다.
한동안 뜸했던 문안을 챙겨 도시 저쪽에서 고향마을로 들어서는데,
뒷산 아카시아가 밥물처럼 허옇게 끓고 있다
인기척은 모두 짐을 싼 앙상한 축사들
오래전, 내 유년의 머리맡을 부풀리던 농경의 울음들은
모두 누가 치워 버렸을까
아가미
옷장과 컴퓨터 틈새에 비좁게 끼어 잠자던
꺽지 같은 아들놈도
거실 책장과 티비 사이에 낮게 파묻혀 자던
모래무지 같은 딸아이도 학교에 간 이른 아침,
어슬렁어슬렁 지느러미 흔들며 주방으로 헤엄쳐 나온
떡붕어 같은 나는
무얼 먹을까 느린 물비늘 비틀어 흔들며 돌다
우유에 후레이크 한 줌 타서 먹는다
거친 곡물이 어금니 사이를 통과하며 잘게 부서지는 동안
둥근 혀는 빗자루처럼 쉼 없이 제 몸을 쓸어
굵은 입자들을 어금니 사이로 연신 모아주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속에서 강력하게 국물만 걸러
목구멍으로 넘기는 혀, 양옆 빗살무늬들을 생각한다
간밤의 미세한 잡념이 숨 끝에만 닿아도
아침 한켠이 숨가빠 오는데, 혀는
괜찮다 괜찮다며 빗살무늬 같은 몸을 재빨리 벌려
엉킨 통로를 열어준다, 수저를 놓고
전화기 너머의 약속을 완성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집 앞 횡단보도를 헤엄쳐 다니는 햇살 한 마리,
거대한 아가미로 행인들을 걸러 먹고 있다.
저장고
삽날을 한 잎 베어 문 공터가 붉게 들춰진다.
단단히 밀봉됐던 지표면이 순간의 삽질에 풀려나고
오래 된 아집들이 잘게 잘려져 한 삽씩 올라온다.
이제 머지않아, 이 속엔 또 다른 생태계가 들어찰 것이다
이 속으로 함구될 세월 저쪽의 사연들은 나와 구면이다
나도 한때는 주유소 한켠에서 잘 삭은 유전(油田)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당분간 마을버스 회사의 직원이다
전화기 속으로 연실 드나드는 석유회사들
공터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몇 개의 질문과 도면들
공사를 한다는 것은 일상의 밀린 청구서들을 허무는 일이다
잘 풀리지 않는 근심의 모서리를 곰곰 찾는 일이며
아직 완공되지 못한 내안의 희망 한 채 건축하는 일이고
그 일상의 머리맡에 내 노모의 알약 또한 장만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몇 개의 날카로운 냉기도
이곳을 통과하면 모두가 잘 데워진 추억이 될 수 있음을,
땀에 젖은 인부 하나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한 개비의 심호흡을 길게— 피워 날린다.
그의 이마 어디쯤에서 차디찬 겨울이 잠시 허리를 편다.
폐 속의 날들
이럴 수가, 내 안에 허공이 들어있었다니
언제인가 나는, 몸 하면 잘 여며진 자루를 떠올렸었다
가을 타작마당 한켠에서
양지바른 툇마루 끝이나 또는 곳간 저쪽으로 옮겨지듯
그렇게 외출을 하고 잠을 자고 일상을 비워내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 안에 이토록, 호흡들이 날기에 좋은 벼랑이 있었다니
그 안에서 바람들은 제 주소지를 찾아 위치를 오가고
새소리, 벌레울음들 낭창낭창 깊어지기도 했었다니
밤이면 별자리들 폐 속 깊이 들어와 반짝, 박혀들고
아침이면 하루치의 호흡 속에서 지구 하나 통째로 발려먹고 있었다니,
폐 속 허공의 날들을 생각한다.
더는 비로 완성되지 못한 구름들과 공중 저쪽, 잘못 들른 새들의 기척
늦은 저녁 무거운 골목을 끌고 귀가하던 아버지의 담배연기까지도
호흡들은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 후 내 사색들의 모퉁이는 점점 더 골똘해지고
가끔은 고향집 뒤꼍에서 내 부주의함을 찌르며 들어오던 낙엽소리와
문득 고개 든 향기로운 슬픔들에 길을 잃기도 했으리라
방금 내 안을 빠져나간 심호흡 한 줌이 지구 반대편 운석 하나
움찔, 들어올린다.
수고양이
언제부턴가, 밤이면
내 지난날들의 무용담은 쉽게 무너졌고
내가 집착해야 할 몇 개의 암컷도 길을 잃고 서성였지요
다만, 몇 근 졸음의 중량으로 저울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밤을 쫓던 내 날렵한 수염들이 느려졌고
늘 그렇듯 밤 골목엔
식물성으로 둔갑한 어둠 몇 마리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화살처럼 쫓던 시절과 어느 늦은 야생의 표정들,
이젠 성급히 체념해야 할 목록들일 뿐입니다
혈통이란 이젠 거추장스러운 내 발톱처럼 묘연합니다
단지 도시의 청결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귀결될
어느 삼류 정치가의 말버릇 같습니다
오늘 밤,
도시의 후미진 골목 그 끝을 따라가 보면
누군가, 잠적이란 가죽 하나 벗어 놓고
모습을 감출 것 같은 예감이 우글거립니다
그리고
오후 저쪽의 담장 밑엔, 그 잠적으로부터 몸을 말리고 있는
수고양이 몇,
중성의 눈빛으로 졸음만 핥아대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 골목에서 살다 보면 문득,
경계를 잘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몸집은 크고 윤기가 흐르며 털은 빛나지만
절기에 따라 갸르릉거릴 울음을 얼마 전 거세당했습니다
-------------
▲ 권혁찬 / 1958년 경기 안성 출생. 서울고속(주) 근무. 주소 :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
===========================================================================================================
■ 심사평
워낭소리의 은근하고 깊이 있는 울림 / 오태환
이번 신인상 심사에서 본심에 오른 열두 분의 작품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박선영 씨의 「마량항 클리토리스」, 최빈 씨의 「립싱크」외 9편, 노정균 씨의 「비」외 9편, 권혁찬 씨의 「워낭소리」외 9편이었다.
박선영 씨는 事象을 자신만의 각법으로 새겨 조형하려는 시도는 살 만하다. 그러나 의욕이 앞서 나갔다고 할까. “마량항 클리토리스에 뿌리를 묻고/ 은갈치 비늘에 흐벅지게 몸 잠그고 싶다”나 “밴댕이 창시를 발라먹으며/ 뻘의 사타구니를 치켜들겠다”(이상 「마량항 클리토리스」)와 같은, 작위적일뿐더러 조악한 표현들이 눈에 사뭇 거슬렸다.
이에 비하면 최빈 씨는 좀 더 편안한 숨결로 대상이 숨기고 있는 의미를 양달로 불러낸다. 하지만 의미의 난삽함이 시적 긴장이나 언어적 쾌감을 유인하기보다 난처한 피로감을 가중시켰고(「립싱크), 표현하려는 것의 구심력 안에 있어야 할 소재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거나 비껴 있어 촘촘하게 조여지는 맛이 떨어졌다(「건조증」).
노정균 씨의 「비」외 9편, 권혁찬 씨의 「워낭소리」외 9편은 마지막까지 갈등을 자아냈다. 두 분 모두 알맞게 갈무리된 상상력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다듬어진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성실하게 빚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두 세계는 아슬아슬 균형을 맞추는 접시저울의 양 끝처럼 대척적 풍경을 드러낸다. 노 씨의 상상력이 디지털로 상징되는 정보사회적 사유를 배경에 깐다면, 권 씨의 그것은 아날로그로 표현되는 농경사회적 감수성을 기저에 둔다.
결국 권혁찬 씨에게 표를 던진 것은 씨가 노정균 씨에 비해 월등한 시적 성취를 보였기 때문은 아니다. 보기에 따라서 노 씨의 문장이 더 매끄럽고, 이미지의 鮮度도 더 인상적일 수 있다. 까닭은 권혁찬 씨의 박진감 있는 리듬을 타고 흐르는 이미지와 진정성의 폭과 울림에 점수를 둔 데 있다. “수입소와 광우병 사이에서 네발 가진 모든 먹구름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더 식음을 전폐했고”나, “뒷산 아카시아가 밥물처럼 허옇게 끓고 있다”(이상 「워낭소리」)는 손끝의 재주만으로 다룰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는 씨가 한낱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워낭소리’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은근하고 깊이 있는 빛깔을 지닌 자기 목소리를 낼 가능성을 드러낸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 이하석, 오태환, 우대식
—《현대시학》201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