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10회 미당 문학상 본심 후보작(1)애채들이 우는 지문의 기억/고형렬
시치
2010. 9. 6. 21:24
제10회 미당 문학상 본심 후보작(1)
애채들이 우는 지문의 기억/고형렬
허공의 그대가 살며시,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눈록들은 전율한다
신이 툭, 히말라야에 던져놓은 재규어
돌이 발에 닿는 순간, 눈이 열리고
그 눈을 찢은 영혼은 갑자기 태어났다
모래를 심장에 전하던 백만분의 찰나
짧은 정강이 아래 봉합된 발바닥
지평선과 대칭한 복부의 곡선과 음부
그 안에 걸려 있는 복잡한 장기들
왜 그것들이 꼭 있어야만 했는가
꽉 다문 입처럼 강인한 항문의 괄약근
그 위를 뛰어가는 한주먹의 흰 돌들
만약 스스로 존재한다 할지라도
누가 저 재규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등골을 타고 성기를 가린 긴 꼬리
호랑가시나무 잎사귀가 뒤덮인 혓바닥
사쁜, 검은 바람의 호명이 되던
헤아릴 수 없는 그 세월, 몰록 흐른 뒤
지구 밖의 허공 속 벼락을 쥐고
공전궤도를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자
마지막 재규어는 지금 어디 있는가
살며시 지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아 한 묶음 꽃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ㅡ<현대문학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