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비스님의 直指〈81〉■ 하택신회 선사 ② 소리와 사물이 텅 비었다
하택신회 선사 ②“소리와 사물이 텅 비었다” |
보살행으로 삶을 회향하려면 모든 존재의 ‘공성’ 이해해야
師 因光寶問 眼耳 緣聲色時 爲復抗行 爲有互 師曰抗互 且置 汝指何法 爲聲色之體 寶云 如和尙所說 卽無有聲色可得 師云 若了聲色空 亦信眼耳諸根 及與凡聖 平等如幻 抗行 回互 其理昭然 光寶 於是領旨
하택신회 선사에게 광보 스님이 물었다. “눈과 귀가 소리와 사물을 만났을 때에 근(根)과 경계가 각자 자기의 위치를 굳게 지킵니까(抗行)? 아니면 서로 어울려 뒤엉킵니까(互)?” “각자 자기의 위치를 굳게 지키거나 서로 어울려 뒤엉키는 것은 그만두고 그대는 무슨 법을 지적하여 소리와 사물의 실체를 삼는가?” “화상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곧 소리나 사물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소리와 사물의 실체가 공함을 안다면 또한 눈과 귀 등의 모든 육근과 그리고 범부와 성인이 평등하게 환영과 같다는 사실을 믿을 것이며, 따라서 근과 경계가 각자 자기의 위치를 굳게 지키는 항행(抗行)이나 아니면 서로 뒤엉키는 회호(回互)도 그 이치가 분명해질 것이다.” 광보스님이 이에 그 종지를 알았다.
해설 : 사람이 살아가는 전체의 영역을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이라 한다. 육근과 육경이 서로 만나면서 그 가운데 육식이 여러 가지로 작용하면서 사람의 삶이 형성되어 간다. 질문을 하는 광보스님은 이것들이 서로 서로 독립이 되어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어울려 뒤엉키면서 관계를 형성하여 이뤄지는 일인지를 물었다. 하택 선사는 육근과 육경 이 모두가 본래로 텅 비어 없는 것이므로 그 사실에 대해서 굳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즉 본래로 없는 것인데 무엇이 그것들의 실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나아가서 육근 육경뿐만 아니라 범부와 성인이라는 것도 똑 같이 환영과 같은 존재이므로 따로 독립하여 존재하거나 서로 관계를 맺으며 어울리거나하는 이치는 처음부터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여졌다. 그러므로 광보스님은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불교에서 가장 많이 독송하는 <반야심경>의 내용에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도 없으며,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도 없으며, 그것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의 의식작용도 없다고 하였다. 뿐인가. 고통도 고통의 원인도, 그리고 고통의 소멸도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도 없다고 하였다. 12인연도 없으며 나아가서 지혜도 지혜의 얻음마저도 없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텅 비어 없다고 보는 견해가 곧 깨달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안목이다. 그래서 “만약 소리와 사물의 실체가 공함을 안다면 또한 눈과 귀 등의 모든 육근과 그리고 범부와 성인이 평등하게 환영과 같다는 사실을 믿을 것이며, 따라서 근과 경계가 각자 자기의 위치를 굳게 지키는 항행(抗行)이나 아니면 서로 뒤엉키는 회호(回互)도 그 이치가 분명해질 것이다.”라고 법문을 설하신 하택신회 선사의 말씀에 보광스님은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불교는 보살행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삶을 만 중생들에게 회향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런데 보살행으로서 자신을 만 중생들에게 회향하려면 먼저 모든 존재와 삶의 전 영역들을 앞에서 가르친 대로 텅 비어 공하다는 실체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존재의 공성(空性)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보살행으로 회향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반야심경>도 <금강경>도 600부나 되는 반야부의 모든 경전도 존재의 공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그와 같이 거듭 거듭 밝혀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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