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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0 여름호 <미네르바> 신인상 당선작_ 김생수, 이현지

시치 2010. 8. 22. 23:47

2010 여름호 <미네르바> 신인상 당선작_ 김생수, 이현지

 

자연시간 외 2편

     

   김생수

 

나팔꽃이 피었다

잠에서 일찍 깬 아기가 방긋 웃었다

잎에 벌레가 꿈틀거렸다

뒤꼍에 사내가 기지개를 켰다

대학에서 법당에서 열심히 세상을 강의했다

미루나무에 쓰르라미가 시원하게 한여름을 울었다

통기타 가수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푸릇푸릇 날아온 새가 세상의 아침을 지저귀면

냇가에 버드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

골목길에 아이들도 씩씩하게 자란다

푸른 눈빛의 칼들이 불면의 밤을 지새울 때

밤하늘 별빛은 풀벌레들 노랫소리에 반짝반짝 빛났다

볏모개에 앉아 그네를 타던

메뚜기 한 쌍, 그 인연으로

깊게 포옹하던 세상 열리는 날에

그 아름다운 운명들이 있었다.

 

 

박명에 서서 목숨을 살피다

 

   김생수

 

어둠에서 밝음으로 가려는 순간

밝음에서 어둠으로 가려는 순간

감춰진 것들이 드러나려는

드러난 것들이 감춰지려는

나타남과 사라짐

사라짐과 나타남

그 사이, 찰나에

나는 있다

 

햇살과 꽃잎 사이에

바람과 낙엽 사이에

피어나는 것들과 지는 것들

지는 것들과 피어나는 것들

그 사이, 순간에

나의 목숨은 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삶이 있듯

생성과 소멸 그 찰나의 사이에서

나의 목숨은 나타나네, 투명하네

 

나는 존재의 모든 사이를 사네

너와 나 사이에서 우리가 있듯

사랑과 이별, 슬픔과 기쁨

눈과, 바람과, 비와

그 사이에서 우리들 생애도 깊다

 

 

날아다니는 허기

 

   김생수

 

"나오십니다!"

키 큰 화부가 중얼거렸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아버지

까맣게 익어 살아온 살과 뼈들은

하얀 가루가 되었다

아, 저 가루들!

들판에서 강변에서 수없이 만나던

마약 같은 생살들이었다

바람 같기도 풀잎 같기도 한

목숨에 끈적끈적 달라붙던 허기들이었다

 

현충원 비석에 미끄러지는 햇살을 쓰다듬으며

어머니는 이담에 나도 올께 하였다

어느날 방으로 날아든 새를 보고 딸애는

새로 이사한 집으로

할아버지가 찾아왔다고 반가워했다

 

"나오십니다!"

들판 가득 누런 곡식들을 닮아

목숨의 살과 뼈들을

흙으로 빚어 살던 아버지 생애

세월이 가 닿는 눈길에 발길에

눈부신 햇살이 되었다.

 

 

[당선 소감]

 

<행행본처 지지발처 (行行本處  至至發處>

또 다시 출발점에 섰다

언제나 그랬듯이 도달점은 없으리라

오래 정박해 있던 항구의 밧줄을 걷고

닻을 올린다, 녹슨 뻘들이 많이 묻어 있구나

"밸러스트 만滿  충수充水- 키 오른편 전타!"

암차를 돌린다, 백파가 인다, 갈매기가 난다

이제 다시 망망 시해茫茫 詩海를 항해하게 되리라

태풍도, 허리케인도, 사이클론도 만나게 되리라

그냥 부딪혀 나가리라

닻 내려 정박할 항구의 아늑한 불빛을 찾지 않으리라

난파 된다해도, 침몰 한다해도, 詩의 바다 임에...

 

참으로 험난한 시 땅을 개간해 밭을 일궈

씨를 뿌리게 해주는 선생님들께 깊이 머리 숙입니다

 

 

*1995『문예한국』신인상 당선

*시집 『고요한 것이 아름답다』

*이메일 : water0202@hanmail.net

* 주소 : 충북 충주시 용산동 191번지

 

 

쿠무타크 사막 외2편

   -낙타풀

 

   이현지

 

나의 절정은 오직 한순간에 있어요

누란의 지친 영혼이 다가와 손짓을 해도

울고 있어도 돌아보지 않아요

무너지는 사구沙丘의 소용돌이에도

눈을 감지 않아요

사막을 향해 열린 내 날카로운 가시가

다시 또 가시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지요

몸 밖으로 나온 가시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내 몸을 다 뒤덮고 있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길을

홀로 지켜야만 해요

언제부터 앞만 보고 서 있었는지

난 그 한계를 알지 못해요

뜨거운 열기를 품고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면 아득한 미로의 시작

그대로 미끄러질지 몰라요

모래시간을 깨운 노을처럼

붉은 장막 펼쳐놓고

큰 지렛대로 서 있을래요

 

 

우포늪

   -생이가래

 

   이현지

 

아주 천천히 보여 드리겠어요

조금씩 조금씩 흩어져야 하니까요

내 몸 한 구석쯤 헐어내어

쇠기러기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어

난 푸르를 수 있어요

어디까지 뻗어가야 할지

알 수는 없지만

물새알 하나 받을 수 있는

가슴은 열려 있어요

싸늘한 바람이 이는 날이면

겨울 늪가로 번져

반짝이는 물비늘 위를 날아올라요

셋인 듯 하지만 하나인 나는

셋인 듯 하지만 둘인 우리는

어둠과 빛을 나누어 지고

서로의 등을 받쳐주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물길을 따라 맴돌고 있는 지금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에요

 

 

 

흔적

 

   이현지

 

짐을 꾸리는 일은 낯설다

떠나야 할 막연함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냄새를 거부하지 않던 벽이며

젖은 눈길을 깊게 해주던 우물

언제나 내 뒷모습을 따라다니던 그림자 남겨질 이곳

텃밭의 무며 배추가 어찌나 나의 발목을 잡던지

구석구석 묻어있는 과거들을 버리려한다

뒤로 돌아가려는 두 눈을 꽉 잡아야 하는데

팔에 힘이 없다

내 키만큼이나 쌓인 흔적들을 끌어안고

발에서 무릎까지는 불 속으로

무릎에서 허리까지는 쓰레기통 속으로

허리에서 머리까지는 가슴 속으로 구겨 넣는다

남겨진 것은 행복일 테지만

버려져야 하는 것들은 아픔일 게다

기억의 밀물이 차기 전에

서둘러 나를 털어낸다

다시는 돌아올 수없는 이곳에

나의 너를 묻는다

이제는 돌아서야 할 시간

 

 

[당선소감]

 

밑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한 강이었다.

그곳에 발을 담그고 서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강은 바다로 변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부는가했더니, 파도가 일고

멀리서 커다란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했다.

나는 천천히 배에 올랐다.

꿈이었다.

 

바로 그날, 당선 소식을 들었다.

 

끝이 어딘지도 모를 망망대해를 홀로 항해해야 한다.

돛을 올리고 하늘을 본다.

이제 시작이다.

두렵고 떨리지만 포기하진 않겠다.

 

아직도 많이 떫고 , 덜 익은 글에 눈길을 모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시인의 길로 인도해주신 스승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아낌없는 충고와 격려로 힘이 되어주신 선배님들과

문우들께도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본명 : 이순옥

*강원도 영월출생

*주성대 문창과 졸업

*이메일 : hyunji01004@hanmail.net

*주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995번지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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