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嘉玄覺大師 到曺溪 振錫而立 祖云 夫沙門者 具三千威儀 八萬細行 大德 自何方而來 生大我慢 師云 生死事大 無常迅速 何暇具儀在 祖曰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師云 體則無生 了本無速 祖曰如是如是 師方具威儀 參須臾 告辭 祖曰返大速乎 師云 本自非動 豈有速耶 祖曰誰知非動 曰仁者 自生分別 祖曰汝甚得無生之意 曰無生 豈有意也 祖曰無意 誰當分別 曰分別 亦非意也 祖歎曰 善哉善哉
영가현각 대사가 조계산에 이르러 석장을 흔들고는 우뚝 섰다. 혜능스님이 말하였다. “대저 사문이란 3천 가지의 위의와 8만 가지의 미세한 행동을 갖춰야 하는데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그토록 큰 아만을 부리는가?”
영가대사가 말하였다. “생사의 일은 크고 무상은 신속한데 어느 여가에 예의를 갖추겠습니까?” “어찌하여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며,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알지 못하는가?” “깨달으면 생사가 없고, 알면 본래 신속함이 없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영가대사가 비로소 위의를 갖춰서 예배하고는 곧 바로 떠날 것을 알렸다.
혜능스님이 말하였다. “너무 빠르지 않는가?”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없는데 어찌 빠른 것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임이 없는 것을 아는가?”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하십니다.”
“그대는 생사가 없는 뜻을 잘 알도다.” “생사가 없는데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없으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혜능스님이 “훌륭하다. 훌륭하다”라고 찬탄하였다.
해설 : 영가(永嘉, 665~713)스님의 휘는 현각(玄覺)이요, 자는 도명(道明)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 사람이다. 8세에 출가해 안으로는 삼장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했다. 특히 천태지관에 정통하여 천태학을 크게 일으킬 사람으로 기대되었던 사람이다. 유마경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영가스님은 선천 3년(서기713) 10월17일 입적하시니 세수가 49세며 시호는 무상대사(無相大師)이고 탑호(塔號)는 정광(淨光)이다. 공교롭게도 영가스님이 열반하던 해에 스승인 육조스님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다.
영가스님은 <유마경>을 읽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스스로의 깨달음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도반 현책(玄策)선사가 6조 혜능스님에게 가서 인가 받기를 권하자 그를 따라 조계산 혜능스님에게 와서 법거량(法擧揚)을 하게 되었다. 법거량이란 자신이 얻은 법을 검증하기도 하며, 타인이 알고 있는 법을 검정해보는 일이다. 선문어록에는 법거량의 내용과 장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직지심경>에 소개된 혜능스님과의 대화가 큰 본보기다.
자신의 법이 어느 정도인가를 인가받기 위해서 멀리서 찾아 온 사람으로서의 영가스님의 태도가 매우 가관이다. 당연히 큰절로서 예배를 올려야 하지만 일부러 아만을 부리면서 주장자를 흔들어 혜능스님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시험해 본 것이다. 혜능스님은 주인과 객이 처음 만났을 때의 예의를 들먹이면서 그를 꾸짖었다. 그랬더니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은 신속한데 어느 여가에 예의를 갖추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옳거니 잘 걸렸다’라고 생각하고 혜능스님은 “어찌하여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 못하며, 신속함이 없는 도리를 알지 못하는가?”라고 하였더니, 곧 바로 날아 온 영가스님의 대답은 “깨달으면 생사가 없고, 알면 본래 신속함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불교의 최대의 화두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본래로 생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으면 모든 시간 모든 공간까지 초월하는 경지이다. 서로가 깨달음의 경지를 논하는 마당에서 생사의 일도 없고 무상도 신속함이 없이 모두를 초월한 경지라는 뜻을 설파하였다. 그래서 혜능스님은 “그렇다. 그렇다(如是如是)”라고 드디어 영가스님을 인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