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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제21회) 신라문학상 대상작/ 만파식적 - 김인숙

시치 2010. 3. 11. 00:34
 

만파식적(萬波息笛)/김인숙

 

 

검은 허공을 마디마디 안고 있는 나는

당신의 입김을 기다리는 피리여요

 

만 가지 근심이 출렁이고 있어요

속 깊이

바람을 불어넣어 내 몸을 덥혀 주어요

내려앉은 어둠을 밀어내 주어요

 

당신의 축축한 입술이 닿으면

깜감한 어둠에 파르르 균열이 일어나지요

 

가지런한 내 숨구멍을 따라

당신의 손가락 끝이 움직일 때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비명이 흘러나와요

내가 깨어나는 소리여요

 

당신이 자아낸 

푸른 음률은 북명(北溟) 바다를 찾아 떠나고

따뜻한 음색은 흐르는 강으로 녹아들며

하늘 아래 외로운 대나무들

무성한 숲으로 서게 하여요

 

내 몸속으로 들어와

깊디깊은 잠을 깨우는 당신은

어두움을 베는 섬광 같은 칼날인가요

강바닥 쿡쿡 내려찧는 상앗대인가요

 

소리로써 천하는 다스려지는데

당신 없는 나는 침묵이어서

슬퍼요, 서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