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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흰 손/채호기

시치 2010. 2. 26. 10:51

그대의 흰 손/채호기 


그대의 흰 손이 내 이마를 짚는다.

그대의 흰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대가

내 메마른 가슴에 물을 퍼 담는다.

물을 뜨기 위해 흰 손을 오목하게 모듬은 수련,그대

의 두 손

나의 물가에 서서 수련 쪽으로 머리를 묻는다.

그대의 흰 손이 내 머리카락에서 피어난다.

그대의 온기가 목덜미를 타고 온몸으로 파문진다.

물처럼 푹신한 그대의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

달콤한 졸음처럼 그대의 흰 손이 머리카락을 파고든다.

꿈꾸는 잠의 꽃 수련,수련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수면에 비친 나를 떠나지 못한다.

나는 수면처럼 나른하게 퍼진다.

물결 따라 반짝임도 없이.


   시집<수련>.문학과지성사.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