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다시보기
[스크랩] 나다/ 이대흠- 애지 2010 봄호
시치
2010. 2. 24. 22:16
나다
이대흠
어머니는 내게 전화할 때 '나다'라고 하신다 말 하는 나와 말 듣는 나 사이가 구별되지 않는다 예전에 전화할 땐, '엄마다'라고 하셨는데 일흔 넘은 어머니는 '나다'란 말 외엔 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몸이 어머니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육체가 가는 걸 느끼며, 나였던 모든 것을 생각하셨을까
나다, 나다, 나다, 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다보면 다른 집 아이들은 물론이고 강아지나 새 새끼, 병아리나 고도리, 두엄 더미의 민들레까지 다 나여서, 나는 어느새 어미가 되고 만다
탯줄이 잘리면서부터 나는
어미였던 기억을 잊으려 했구나!
오래 전부터 나인 태양이 뜨고 나인 바람이 분다 꽃인 내가 피고 물인 내가 흐른다 나는 돌이고, 날씨고, 사랑이다 목숨인 나는 죽음이다
어머니 가신 후 나는
널 속에 누워 이렇게 말하리
나다!
- <애지> 2010 봄호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글쓴이 : 고드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