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들

제9회 미당문학상 후보작 /시- 조연호 ‘고전주의자의 성'

시치 2009. 9. 4. 11:34
제9회 미당문학상 후보작 /시-조연호 ‘고전주의자의 성'

비틀어 쓴 ‘세상에 확실한 게 뭐 있나’
시 - 조연호 ‘고전주의자의 성’ 외 12편

평론가 권혁웅씨는 “미당문학상 예심위원들은 최종심 후보 시인 10명의 면면이 한국 현대시의 스펙트럼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작업 경향별 안배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연호는 ‘난해시’의 선두 주자”라고 했다. 중략하고 남은 부분만으로도 그런 면모는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고전주의자의 성’은 짧은 편이다. 4000자가 넘는 ‘맹지’ 같은 시는 맥락을 알 수 없는 성채 같다.

 

조연호(40·사진)씨에게 ‘해명’을 부탁했다. 네 번째 행 “내가 그대에게…”는 ‘나는 나가지 않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라는 뜻이란다. 왜 비틀어서 쓰는 걸까. 조씨는 “시가 한 가지만을 의미하도록 분명하게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런 시론(詩論)의 바탕에는 “이 세상에 확실한 건 뭐가 있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다. 가령 타인은 날마다 제대로 아는 데 실패하는, 대표적인 대상이다.

조씨의 시는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있다”는 평가다. 읽는 법이 여러가지일 게다. 권혁웅씨가 추천하는 독법. “하루에 한 두 편 만 읽되 가능하면 느릿느릿 소리를 내며 읽어라. 자주 쓰이는 몇 가지 상징을 이해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조금 편해진다.” 시는 시간을 투자해 반복해서 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고전주의자의 성

부인이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산문과 운문을 생의 모든 부분에서 반복했다
회색이 만든 아름답고 슬픈 시대
내가 그대에게 하루에 하나씩의 문밖을 던지던 것에 아직 방문객이 없던 시절
그늘을 잃었고 그날의 그림자를 모두 잃었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하지만 자고 나면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를 알 수 없게 되리라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쇼팽에게 먼지를 묻혀주는 밤
보다 더 굵고 긴 악몽에
향기나는 콘돔을 씌우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 도착하기 전에 비는 죽는다
이 계절에 구름을 위쪽 단추까지 채우고 또 이 계절에
우린 젖은 우리를 풍향계 앞에 꺼내놓고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운 없는 어린잎이 현관문을 두드렸어 그런 뒤적이는 소리들이
내 감정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부숴놓곤 했다
창에 돌을 던져준 건 고맙지만 창들은 예전부터 깨진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양손 곁에 놓여 있는 더러운 주말은 그렇다면 즐겁다
연금술의 치유력으로 겨울잠을 한 조도(照度) 포기한다
괄태충처럼 사라질까봐 두렵다
쓸쓸하게 녹아 없어진 초의 개수를 매일 밤 처음부터 다시 외워보며
그대도 나처럼 신비한 불결을 향해 잠들어라

-'문학동네' 2008 겨울호


신준봉 기자

◆조연호=1969년 충남 천안 출생. 94년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저녁의 기원』 『죽음에 이르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