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기념 수건 / 신달자
사진<다음문화원형>에서
기념 수건 / 신달자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다가 수건에 새겨진 글씨를 본다
축 회혼식 옆에 두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회혼식이라
60년 수건돌리기를 하는 부부 얼굴이 떠오른다
수건을 숨긴 채 등 뒤를 맴돌고 눈치채지 못하게 수건을 놓으려고 놓으려고 등 뒤를 도는
등 뒤에 소리없이 놓여진 수건을 잽싸게 잡아채고 다시 등 뒤를 도는 60년을 등 뒤를 돌며 수건돌리기를 하는 부부가 내 얼굴을 닦고 있다 아직도 서로 수건을 마음속에 감추고 숨겨둔 채 등 뒤를 돌고 있는 두 이름이 내 젖은 목을 닦는다 등 뒤로 수건을 놓았다가 부부가 되었을까 나는 문득 그의 등 뒤에 수건을 놓고 달아나고 싶다 지금도 그의 뒤를 뺑뺑 돌면서 그의 등 뒤에 계속 수건을 놓고 싶다
아침마다 내 얼굴을 닦는 수건을 돌돌 말아 그의 등 뒤에 놓으며 60년을 보내고 싶다 금박으로 우리 이름을 콱 찍어 올레리 꼴레리 장난치고 싶다
<시와 정신> 2008년 겨울호
[감상]
생활 속에서 갖게 되는 아주 작은 느낌 하나를 크게 확대하여 쓴 시이다. 말하자면 마이크로 기법으로 쓴 시라 하겠다. 시인은 우선 아침에 세수를 하고나서 자신의 얼굴과 목을 닦아주는 수건에 대해서 주목한다. 단순한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라? 수건에 <축 회혼식>이라 쓰여 있네. 그 옆에는 부부의 이름도 쓰여져 있고. 회혼식을 축하한다? 회혼식이란 결혼한 부부가 60년을 함께 살아 결혼 생활만으로 회갑의 세월을 보낸 경우를 말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이 회갑이 되었을 세월이겠다. 그러기에 이를 기념하여 수건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념수건인 모양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면서 시인의 상상력과 장난기가 발동한다. 시인의 상상력의 그물에 <60년 수건돌리기를 하는 부부 얼굴이 떠오른다>. 수건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수건을 돌리는 행위와 어린 시절의 수건돌리기 놀이가 한 단어 안에 만나게 된다. <60년> 동안이나 <수건돌리기를 하>다니? 이 얼마나 재미난 상상력인가! 더 나아가 아직도 <수건돌리기를 하는 부부>가 시인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직도 서로 수건을 마음속에 감추고 숨겨둔 채 등 뒤를 돌고 있는 두 이름이> 시인의 젖은 목을 닦아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즐거운 상상이겠다.
시인은 거기서 잠시, 수건돌리기를 하는 부부가 어떻게 하여 부부가 되었을까, 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아마도 <뒤로 수건을 놓았다가 부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짐작을 해보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의 궁금증이기도 하지만 부러움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시인의 소망이 싹이 튼다. <나는 문득 그의 등 뒤에 수건을 놓고 달아나고 싶>어진다. <지금도 그의 뒤를 뺑뺑 돌면서 그의 등 뒤에 계속 수건을 놓고 싶>어진다. 여기서 그가 누구인가 확인할 필요는 없다. 사람에겐 누구나 이렇게 소중한 그가 마음속에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마지막 구절은 더욱 장난스럽고 재미있으면서도 그것이 너무 그렇기에 눈물겹기까지 하다. 왜 우리가 너무 재미나게 웃다보면 눈가에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침마다 내 얼굴을 닦는 수건을 돌돌 말아 그의 등 뒤에 놓>고 싶다고. 그렇게 하면서 또 <60년을 보내고 싶다>고. 이 얼마나 안타까운 소망인가! 나아가 시인은 <금박으로 우리 이름을 콱 찍어 올레리 꼴레리 장난치고 싶다>고 글을 맺는다. 장난기는 장난기로되 인생의 애수가 깃든 그런 장난기이다.
신달자의 시는 가끔 이렇게 질퍽한 정서에 젖어있게 마련이고, 아닌 척 주저앉아 펑펑 항아리 울음을 퍼대고 싶은 내면의 충격을 터져 나올 듯 터져 나올 듯 안쓰럽게 쓸어안고 있다. (2009.1.14 나태주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