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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김왕노

시치 2009. 8. 4. 12:22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김왕노 

 

 

 

 그때, 내가 담배를 한 대 태워 물고

 가을의 하늘을 건너가는 철새를 바라볼 때였을까.

 아니면 화장실에 간 사이 핸드폰을 받는 사이

 일은 그런 사소한 것에서 털어져버리는 것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그렇게 또 놓쳐버린 것

 

 기차에 내가 올라 챙겨야 할 가을과 가을의 편지와

 가을의 쓸쓸한 문장과 이별이

 머위 잎같이 푸른 머리를 창가에 기대고 조는데

 벌써 나를 지나쳐 전생과 후생의 터널을 지나며

 기적 소리나 울리는데

 

 내가 잠깐 한 정치인을 두고 열 받아 있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로 주먹을 파르르 떨 때

 아니면 환한 수국 꽃에 취해 있을 때

 따지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내가 목숨 거는 사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그런 틈을 노려 가버리는 듯 영영 가버려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또 놓쳐버려

 내가 먼 훗날 도착할 내 후생을 지나 기차는 또 어디로 향하는지

 철길은 은하계를 지나 또 어디로 뻗어 있는지

 내 애간장을 끊어놓으며 들려오는 저 기적 소리

 저 철거덕 기차 바퀴 소리

 

 

 

             시집『말달리자 아버지』천년의시작 2006

 

 

 

                         自 序

 

              시에서 일탈하면 자유롭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신분은 좀비

   나 다시 시로 돌아온다

   시가 내 살의 각을 뜨는

    시의 백정이 있는

   시의 천장사가 있는

   시의 아편쟁이가 있는 곳으로

   푸른 부메랑이 되어

   일탈이 가르쳐준 길 따라

    무덤이고 부활인 곳으로

 

 

                       1957년 경북 포항 출생.

                       1992년『매일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슬픔도 진화한다>등

 

 

 

 

 

 

출처 : 폴래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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