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김왕노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이번에 또 놓치고
- 김왕노
그때, 내가 담배를 한 대 태워 물고
가을의 하늘을 건너가는 철새를 바라볼 때였을까.
아니면 화장실에 간 사이 핸드폰을 받는 사이
일은 그런 사소한 것에서 털어져버리는 것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그렇게 또 놓쳐버린 것
기차에 내가 올라 챙겨야 할 가을과 가을의 편지와
가을의 쓸쓸한 문장과 이별이
머위 잎같이 푸른 머리를 창가에 기대고 조는데
벌써 나를 지나쳐 전생과 후생의 터널을 지나며
기적 소리나 울리는데
내가 잠깐 한 정치인을 두고 열 받아 있을 때
이성을 잃고 분노로 주먹을 파르르 떨 때
아니면 환한 수국 꽃에 취해 있을 때
따지면 아무 일도 아닌 것에 내가 목숨 거는 사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그런 틈을 노려 가버리는 듯 영영 가버려
전생에 놓쳐버린 기차를 또 놓쳐버려
내가 먼 훗날 도착할 내 후생을 지나 기차는 또 어디로 향하는지
철길은 은하계를 지나 또 어디로 뻗어 있는지
내 애간장을 끊어놓으며 들려오는 저 기적 소리
저 철거덕 기차 바퀴 소리
시집『말달리자 아버지』천년의시작 2006
自 序
시에서 일탈하면 자유롭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신분은 좀비
나 다시 시로 돌아온다
시가 내 살의 각을 뜨는
시의 백정이 있는
시의 천장사가 있는
시의 아편쟁이가 있는 곳으로
푸른 부메랑이 되어
일탈이 가르쳐준 길 따라
무덤이고 부활인 곳으로
1957년 경북 포항 출생.
1992년『매일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슬픔도 진화한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