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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꽃 外2편/김 륭

시치 2009. 7. 28. 13:06

남자의 꽃/김 륭

 

 

  밥을 먹는 동안 몸이 물처럼 흘렀다는 걸 몰랐더구나. 이즈음 나는 불같이 지나간 연애의 걸음걸이가 매달렸던 눈썹 위 나무의자를 치웠다.

 

  영혼의 도색이 많이 벗겨졌더구나. 바람을 인질로 잡고 사는 게 아니었다. 발바닥이 너무 질겨 코를 파던 꽃의 배후를 알겠더구나.

 

  길에서 태어났으므로 집에서 기를 수 없는 네발 달린 짐승의 울음, 손목을 긋거나 혀를 잘라도 달랠 수 없는 말이 있더구나. 그대 언젠가 지워버린 뱃속의 아기처럼 나는 아무래도 고분고분 발굴될 수 없는 한점 바람의 핏덩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얻기 위해 꼬리를 잘랐으나 저기, 저 꽃들은

  바람의 발바닥이 붉다는 농담 따위나 히죽히죽 건넸을 뿐

 

  날이 갈수록 색을 더하는 여자가 내 안에 살고 있는 줄 몰랐더구나. 성기처럼 앉아 피를 돌리는 줄 비로소 알겠더구나.

 

  미안하다, 늙어가는 게 미안한 일이어서 이즈음 나는 치사량의 나이를 먹고

  눈물의 배후를 캐는 중이다.

 

  <서정시학 2008 가을호>

 

  

    키스의 기원/김륭

 

 

시뻘겋게 달아오른 불판 위에 딱, 한 점이 남았다 지글지글

 

입은 죽어도 잠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심증보다 물증을 남겨야 한다

몸을 피우던 죽음이 질겅거리다 딴전 피듯 뱉어낸

꽃술 저, 입술

 

까맣게 파리 떼처럼 새까맣게 삼겹살 한 점으로 달라붙었던 사람들 눈치껏

젓가락 내려놓고 내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저, 저 문을 열어

혀를 눕히지 못한다면 키스는 완성할 수 없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입을 빌려

까무룩 몸을 닫았다 가는 것이다 사는 게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죽음에게 잠시 혀를 빌려주는 것이다


 

 

       바람의 육체/김륭

 

 

  몸 안에서 죽은 시간이 머리카락으로 자라

  들어 올린 머리, 팔베개 할 수 없는 달의 무덤가로 훌쩍 키만 자란

  바람이 울어 자꾸 울어 손발만 그려주면 사람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당신

 

  털썩, 주저앉아 바닥칠 수 없는 나무를 갈비뼈 삼아 육체를 드러내는 당신은 라면박스로 집 지어준 새끼고양이 같아서 우리 어머니 죽어서도 고삐를 놓지 않을 송아지 같아서

  운다 자꾸 울어서 죽지 않는다 살아서 울며

  울어서 죽음마저 깨운다

 

  울어라, 울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울음의 솔기가 풀릴 때마다

  돋보기 쓴 어머니 바늘에 실 꿰고 나는 낮은 지붕 위로

  가만히 눈물 한 장 더 얹어둔다

 

  문 쪼매 열어봐라

  너그 아부지 왔는갑다

 

 

 

♧시작노트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입안에 진실이 담겨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혀는 보다 싱싱한 죽음을 위해 키우는 한 마리 물고기, 붉은 살을 가진 바닷물고기처럼 싹둑 눈꺼풀이라도 잘라내야 하는 걸까. 울음마저 너무 말라비틀어진 탓일 것 같다. 요즘은 자주 구름이 얼굴을 만지러 내려온다.

 

 

<문학나무 2008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