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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수의 집 짓는 이야기/황학주

시치 2009. 6. 24. 00:58

 어느 목수의 집 짓는 이야기/황학주

 

 

          기적처럼 바다 가까운 데 있는 집을 생각하며 살았다

          순서가 없는 일이었다

          집터가 없을 때에 내 주머니에 있는 집

          설계도를 본 사람 없어도

          집 한 채가 통째로 뜨는 창은

          미리 완성되어 수면에 반짝였다

 

          나무 야생화 돌들을 먼저 심어

          밤바다 소금별들과 무선 전화를 개통해 두고

          허가 받지 않은 채 파도소리를 등기했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하다

          출입문 낼 허공 옆 수국 심을 허공에게

          지분을 떼 주었다

 

          제 안의 어둠에 바짝 붙은 길고긴 해안선을 타고

          다음 항구까지 갈 수 있는 집의 도면이 고립에게서 나왔기에

          섬들을 다치지 않게 거실 안으로 들이는 공법은

          외로움에게서 배웠다

          물 위로 밤이 솟아오르는 시간 내내

          지면에 닿지 않고 서성이는 물새들과

          파도의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가식으로 정렬된 푸르고 흰 책등이

          마을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바다 코앞이지만 바다의 일부를 살짝 가려둘 정도로

          주인이 바다를 좋아하니

          바다도 집을 좋아해 줄 수 있도록

          자연으로 짓는 게 기본

 

          순서를 생각하면 순서가 없고

          준비해서 지으려면 준비가 없는

          넓고 넓은 바닷가

          현관문이 아직 먼데 신발을 벗고

          맨발인 마음으로 들어가는 집,

          내 집터는 언제나 당신의 바닷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