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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인 이성복

시치 2009. 5. 18. 23:17

시인 이성복(李晟馥,1952.6.4∼  )

 

 

  시인.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ㆍ동대학원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에 <정든 유곽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계명대 불문과 교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로 김수영 문학상(1982), <숨길 수 없는 노래>로 소월시문학상(1990) 수상.


  1952년 경북 상주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 참가하여 글쓰기 재능을 보였다. 1968년 경기고교에 입학했으며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으며,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학 불문학과에 입학,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1999년 현재 계명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는 혁명적이라 할 만큼 과감한 시 문법의 파괴와 번뜩이는 비유로 평론가들을 놀라게 하였다. 시적 특징은 고통스런 세계에 대한 공격적 목소리,  화려한 수사, 연상작용을 통한 이미지 연결이다.

  1985년부터 동양 고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여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남해금산>(1986)을 펴냈다. 이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그 여름의 끝>을 발표함으로써 김소월과 한용운의 뒤를 잇는 연애시인으로 평가되었다.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또한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또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받기도 했다.

 

【경향】개인적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연보】

1952년 경북 상주읍 오대리에서 아버지 이한구(李漢求)와 어머니 송정남(宋丁男)의 오남매 중 넷째로 출생.

1971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학과 입학.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부임한 김현 선생을 처음 만남.

1972년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형성]에 편집기자로 들어감. 독문학에 심취

1973년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전홍표, 진형준과 교우. 4월에 해군 입대. 복무 중에 신문문예 투고도 할만큼 간간이 습작시를 만지나 다시 낙선

1976년 제대 후 복학. 황지우와 함께 교내 시화전을 하거나 정과리, 이인성, 진형준 권오룡 등과 만남. 산문집 <꽃피는 나무들의 괴로움>에 실린 소설 <천씨행장> 완성, <서시> 씀. 문리대 문학회 시화전 때 황동규 시인을 만남.

1977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 <정든 유곽에서> 발표, 등단

1978년 대학신문사 전임기자로 들어감. 이 시기에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발표. <그날>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

1979년 대학원에 진학. [국민서관]에서 아동문학서적의 교정일로 8개월 근무

1980년 대학원 동기였던 김혜란과 결혼.  7월, 신군부에 의해 [문학과 지성] 폐간. 10월에 첫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상재. 시인 박남철, 김혜순, 최승자 등을 알게됨. 「문예중앙」에서 김광규, 윤재걸과 더불어 대담.

1981년 <보들레르에서의 현실과 신비>라는 석사학위 논문 완성

1982년 대구 계명대학에 강의 조교로 부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제2회 김수영문학상수상. 

1984년 프랑스의 엑스-앙-프로방스에 부인과 함께 유학.

1985년 귀국.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 

1986년 제 2 시집 <남해 금산>(문학과 지성사) 출간.

1988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연애시와 삶의 비밀>을 창작 일기형식으로 발표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란 박사학위 논문 완성. 제4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0년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먼 길>과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이 살림에서 출간됨.

1992년 귀국. 계명대 미대 출신의 화가 이병헌과 교류. 이병헌의 누드를 소재로 <소묘> 씀.

1993년 제4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지성사) 출간. <네르발 시 연구-역학적 해석의 한 시도>(문학과 지성사) 간행.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 불문과 부교수로 재직.

 

【시】<정든 유곽에서>(1977.문학과 지성)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78) <그날>(1978) *<그 여름의 끝>(1990) <숨길 수 없는 노래>(1990)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문학과 지성사) <남해금산>(1986.문학과 지성사) <그 여름의 끝>(1990.문학과 지성사)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문학과 지성사)

【저서】<그대에게 가는 먼 길>(1990.살림)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1990.살림) <네르발 시 연구>(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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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의 자기혁신을 위해서> - 최동호

  1977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성복은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등의 시집을 간행했으며, <숨길 수 없는 노래> 등으로 제4회 소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가 80년대 시단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화려한 수사로 전개되는 번뜩이는 비유들은 해체되어 가는 80년대의 정신사적 징후를 날카롭게 예감케 하였으며, 80년대의 많은 젊은 시인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남해금산>에 이어 <숨길 수 없는 노래>에 이르러 그의 시는 서구적 모더니즘을 벗어나 동양적 형이상의 세계에의 접근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시적 사고의 전변은 그 동안 우리 시의 중심축이 되었다. 서구 편향의 유행적인 성향이 바뀌고 있음을 예민하게 드러낸 예가 될 것이다.

  “어두운 물 속에서 밝은 불 속에서/서러움은 내 얼굴을 알아 보았네/아무에게도 드릴 수 없는 꽃을 안고/그림자 밟히며 먼 길을 갈 때/어김없이 서러움은 알아 보았네/감출 수 없는 얼굴 감출 수 없는 비밀/서러움이 저를 알아 보았을 때부터/나의 비밀은 빛이 되었네 빛나는 웃음이었네/하지만 나는 서러움의 얼굴을 보지 못했네/그것은 서러움이 비밀이기에/서러움의 비밀을 나는 알지 못하네” - <숨길 수 없는 노래> 전문

  이 서러움은 나를 알아보지만 서러움은 그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서러움을 알 수 없다. 내가 서러움을 알 수 없으므로 숨길 수 없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이다. 우리 서정시에서 서러움은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 등 많은 시인들의 시적 주제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성복의 시에서의 서러움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불가능한 것으로부터의 좌절이라기보다 존재 그 자체로부터 파생되는 형이상학적 빛을 머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시적 발상이 소월적이며, 시적 어법이 한용운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르다. 서러움과 나는 하나가 아니다. 서러움과 나는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빛나는 웃음으로 매개된다. 이 이분법적 사고는 그의 시를 종전의 시인들과는 다른 형이상적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느낌은 그렇게 오는가/꽃나무에 꽃이 질 때/느낌은 그렇게 지는가/종이 위의 물방울이/한참을 마르지 않다가/물방울 사라진 자리에/얼룩이 지고 비틀려/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있다.” - <느낌> 전문.

  이 느낌은 왔다가 사라지는데, 종이 위에 떨어진 물방울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느낌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느낌과 물방울의 흔적 사이에는 존재의 있음과 없음에 대한 시적 성찰이 담겨 있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은 서러움이며, 그 서러움은 숨길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성복의 시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있음과 없음의 변증법이 하나로 될 때에도 그의 시적 진술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나는 당신이 그리 먼데 계신 줄 알았지요 지금 내 살갗에 마른 버즘 피고 열병 돋으니 당신이 가까이 계신 줄 알겠어요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당신이 조금 빨리 오셨을 뿐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당신 손잡고 멀리 가고 싶지만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고, 한 발짝 물러서면 한 발짝 다가오는 당신, 우리 한 몸 되면 나의 사랑 시들 줄을 당신은 잘 아시니까요” - <병든 이후>

  다가서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가서는 당신과 나는 끝내 하나가 되지 않는다. 당신과 내가 한 몸이 되면 사랑이 시든다고 화자는 당신의 생각을 대변한다. 내가 병들어 있으므로 당신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끝내 하나가 되면 그 사랑이 시든다는 시적 발상은 아마도 이성복 시의 근저에 깔려 있는 이원론일 것이다. 당신과 내가 가까이 있음으로 파생되는 긴장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서러움의 얼굴 또한 그러하다. 이 <병든 이후>의 시적 어법이 한용운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이성복의 시가 머금고 있는 이원론은 근원적으로 한용운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님은 부재하지만 항상 함께 있고,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 한용운 시의 시적 화자가 기루어하는 님이라면, 이성복 시의 화자는 언제나 분화된 대타의식의 대상으로서 당신을 인식한다. 한용운에서 이성복에의 거리가 그동안 서구의 문화적 충격 속에 배타된 사랑의 방법적 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당신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웃는 것 같았고 우는 것 같았고 온갖 슬픔과 기쁨이 하나로 섞인 그 소리는 나의 머리끝 발끝을 끝없이 돌아나갔습니다. 그 소리에 잠겨 나도 당신도 잊혀지고 헤아릴 수 없는 윤회의 고리들이 반짝였습니다. 반짝임 사이로 어둠이 오고 나도 당신도 남이었습니다.” -<사슬>-

  당신과 내가 아무리 깊은 관계를 갖더라도 결국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이 시의 화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을 속박하는 윤회의 고리를 반짝이며, 육체적 환희가 지나가면 결국 사랑하는 사람도 남남이라는 시적 인식은 구체적 행위를 동반한 성적 체험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이윤회의 사슬을 뛰어넘는 깨달음의 세계를 노래한 한용운과 윤회의 사슬이 반짝이는 사랑을 노래한 이성복의 거리에서 우리는 연애시의 가능성과 한계를 엿보게 된다. 이성복의 시적 진로는 반짝임에서 느낌으로, 느낌에서 서러움으로 나아갈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 서러움이 서러움의 비밀로서 서러움의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아마도 그는 숨길 수 없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으며, 이 노래를 통해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형이상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출처 : 碧 空 無 限
글쓴이 : 언덕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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