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스크랩] 문화저널 21에서 선정한 이 달의 좋은 詩

시치 2009. 4. 30. 21:53

 

   아래는 <문화저널21>에서 이달의 시로 선정한 석여공의 시 <동백>에 대해 나태주 시인이 쓴 감상평입니다.   

 

 

 

      동백 / 석 여 공


      누가 첫 입술로 저 동백에 입맞춤 했나
      누가 저 동백 못 잊게 해서 
      들어오시라고, 성큼 꽃 속으로 동백길 가자고 
      붉은 몸 열어 만지작거리게 했나
      저 동백 누가 훔쳐 달아나 버려서 
      혼자라도 그리운가 아득히 
      동백을 보면 언제나 춘정은 몸살지게 살아
      나 아직 쿵쿵 뛰는 가슴이어서 
      그대여 저 붉은 귀에다 소식 전하면 
      그 길에 누워서 죽어버려도 좋겠네 


      석여공 시집, <잘 되었다> 문학의 전당 간


      감상


   얼마전 <여공>이라는 법명을 가진 승려로부터 연락은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내가 <불교문예>라는 잡지에 추천한 일이 있는데 이번에 작품을 모아 시집을 한 권 낼려고 한다며 표4의 글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좋은 일이기도 하고 가볍게 거절할 일도 아니어서 그러마 하고 원고를 보내달라 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눈이 크게 떠지는 시들이 많았다.

   대개 스님들의 시를 읽어보면 의욕이 앞서거나 불교적인 알음알이가 지나치게 문장 밖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이분의 시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세속인의 그것보다 솔직하고 담백한 정한이 드러나 있었다. 가령 위의 시에서도 그렇다. 우선 첫 행을 한 번 되돌려 읽어보시라. <누가 첫 입슬로 저 동백에 입맞춤 했나>. 도대체 이렇게 도발적인 시를 그리 흔하게 만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읽다보면 점입가경이다. <들어오시라고, 성큼 꽃 속으로 동백길 가자고 / 붉은 몸 열어 만지작거리게 했나>. 이쯤 되면 미당의 시행에서나 만났음즉한 날렵하고도 진한 우리 토속의 언어감각의 진가를 선보임이 가하다 할 것이다.

   시의 후반부로 와서는 더욱 그러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대여 저 붉은 귀에다 소식 전하면 / 그 길에 누워서 죽어버려도 좋겠네>. 그래서 나는 표4의 문장에 이렇게 적기에 이르렀다. 옮기면 이러하다.


   여러 편 읽을 것도 없다. 한두 편만 읽으면 그가 얼마나 순한 가슴을 지닌 산사람인 줄 알 것이다. 아니다. 서너 편만 더 읽으면 그가 얼마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마음인 줄 알 것이다. 이왕이면 끝까지 읽어라. 그러면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를 쓰는 이 땅의 한 사람 좋은 시인임을 눈에 불을 켠 듯 알 것이다. 우선 말씀이 활달하고 부드럽다. 그 마음씨가 또한 따스한 봄날이다. 어쩌리요? 이런 스님 한 분 산문에 숨겨두고 우리가 어쩌리요? 그저 좋은 시인 한 분 뵈었다 말 하리라. 만나는 날 정말로 있다면 향기로운 차나 한 잔 마주하기를 바란다 하리다. 결코 내가 좋다고 말하지 않는 불교적인 시가 아니다. 그냥 불교시다. 하, 좋다. 다 좋다. 나도 좋고 세상이 다 좋다. 

출처 : 성주사 가릉빈가찬불단
글쓴이 : 솔바람물결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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