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관련

沈園(심원)/ 陸遊(육유)

시치 2009. 4. 14. 00:34

 

[融] 고전읽기 4월13일(月) 강의록(1)-우무석(시인)    

 

沈園(심원)/ 陸遊(육유)

 

城上斜陽畵角哀

성상사양화각애

 

沈園非復舊池

심원비복구지

 

傷心橋下春波綠

상심교하춘파녹

 

曾是驚鴻照影來

증시경홍조영래

 

성 위로 해 기울고 피리소리 애달픈데

심씨의 정원은 결코 옛 연못과 누대가 아니네

슬픈 것은 다리 아래 푸른 봄물인데

일찍이 놀란 기러기가 그림자를 비추었네

 

 

夢斷香消四十年

몽단향소사십년

 

沈園柳老不吹綿

심원유노부취면

 

此身行作稽山土

차신행작계산토

 

猶弔遺踪一泫然

유조유종일현연

 

꿈이 깨지고 향기마저 사라진지 사십년

심원의 버드나무도 늙어 솜털 날리지 않네

이 몸은 가서 계산의 흙이 되리

아직도 남은 자취 잊지 못해 눈물만 흘리네

 

<참고> 

육유(陸游)와 당완(唐婉)의 애틋한 사랑의 시 

 

중국 송대(宋代)의 시인 육유(陸游) 스스로 문집에 담아 후세에 남긴 시는 대략 9,000여 수이지만 2만여 수의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시에 대한 열정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못지 않았다 한다.

육유(陸游)가 태어난 다음해에 북송은 여진족(女眞族)이 세운 금에 의해 멸망했고 남으로 쫓겨간 송(南宋)은 금과 줄기차게 싸웠는데 주전파의 핵심 인물이었던 육유는 걸핏하면 관직을 강등 당하거나 귀양살이를 했다.

육유(陸游)는 스무 살 때 사촌누이인 당완(唐婉)과 결혼했다. 육유(陸游)의 어머니는 금슬이 너무 좋은 아들 부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니 날이 갈수록 며느리 구박을 심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육유(陸游)의 어머니는 이혼을 강요하기에 이르렀고 당시의 관습상 자식이 부모의 영을 거역할 수는 없었던 시대라 이혼을 하긴 했지만 육유(陸游)는 당완을 이웃 마을로 몰래 피신시키고 간간이 가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애틋한 사랑의 날들이 얼마 이어지지 않았을 때 육유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노발대발하며 다시 내 아들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노라고 하며 멀리 당완을 쫓아 버렸다.

육유는 어머니가 점지해 준 왕씨 여인과 재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완(唐婉)도 문인 조사정(趙士程)에게 재가(再嫁)를 했다. 8년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육유가 고향인 소흥(紹興) 우적사(禹迹寺) 남쪽에 있는 심씨원(沈氏園)이란 경치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바람 쐬러 나온 당완(唐婉) 부부와 눈이 마주친 육유와 당완(唐婉)은 깜짝 놀랐지만 말도 못 나누고 헤어진다. 조사정(趙士程)이 아내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전남편이라고 하지 않는가. 도량이 넓은 조사정은 육유에게 술과 안주를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육유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 며칠 후 조사정(趙士程) 몰래 전처에게 시를 한 수 전하니 유명한 차두봉(釵頭鳳)이다.

가슴이 미어진 옛정에 육유(陸游)는 통곡하는 심정으로 간신히 시 한 수를 지어 당완(唐婉)에게 몰래 전했다 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釵頭鳳(차두봉, 비녀머리의 봉황)이었다.

 

紅酉禾手

홍유화수

 

黃呻酒

황신주

 

滿城春色宮墻柳

만성춘색궁장류

 

東風惡 歡情薄

동풍악 환정박

 

一懷秋緖

일회추서

 

幾年離索

기년리색

 

錯 錯 錯

착 착 착

 

그대는 부드러운 섬섬옥수로

나에게 황주를 부어주었지

성안에 넘친 봄빛 실버들로 늘어질 때

동풍이 사나워 인연이 깨졌으니

그리움과 한에 사무친 가슴

외로운 나날로 몇 해를 보냈던고

아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여

 

 

春如舊

춘여구

 

人空瘦

인공수

 

痕紅 鮫靑透

흔홍 교청투

 

桃花落 閑池閣

도화락 한지각

 

山盟雖在

산맹수재

 

錦書難託

금서난탁

 

莫 莫 莫

막 막 막

 

봄은 예나 다름이 없건만

사람은 보람 없이 여위어만 가니

연지 묻은 손수건 눈물에 젖는구나

복숭아꽃 스러져 화원마저 쓸쓸하니

사랑의 맹세 변함없건만

정을 담은 편지 그 누가 전해주랴

아아, 안돼, 안돼 어쩔 수 없는 내 신세야

 

                                    차두봉 시비(육유와 당원)

 

마음이 있어도 마음을 전할 수 없으니 그 비통(悲痛)한 심정. 이런 마음을 달랠 길 없던 당완(唐婉)은 용기를 내어 남편 조사정(趙士程)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여 동의를 구하고, 사람을 보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송별주(送別酒)를 나누어 마시고 헤어지며 차두봉(釵頭鳳)에 대한 答詩(답시)를 남겼다

차두봉(釵頭鳳)에 부쳐>라는 시였다.

 

차두봉(釵頭鳳)에 부쳐

 

世情薄

세정박

 

人情惡

인정악

 

雨送黃昏花易落

우송황혼화이락

 

曉風干

효풍간

 

痕殘 欲箋心事

흔잔 욕전심사

 

獨語斜欄

독어사란

 

難 難 難

난 난 난

 

세상 물정 박정하고

세상 인심 모질군요

비 뿌리는 황혼에 꽃이 쉬이 떨어지듯

새벽바람 불어와도

내 마음 젖고 싶었으나

난간에 기대어 서서 혼잣말 할 뿐이네

아아, 어렵고도 어려워라!

 

人成各

인성각

 

今非昨

금비작

 

病魂長似秋千索

병혼장사추천색

 

角聲寒 夜岸珊

각성한 야안산

 

酷人尋問

혹인심문

 

咽裝歡

인장환

 

瞞 瞞 瞞

만 만 만

 

사람은 각각이 되어 버렸고

지금은 어제가 아니네

병든 마음 그네 끈처럼 길기만 하구나

뿔피리 소리 차갑고 야밤의 빗장 비스듬히 걸려 있는

데사람들이 물어볼까 두려워눈물 삼키고 즐거운 척하였네

아아, 모두가 거짓이로다!

 

당완(唐婉)은 이렇게 육유(陸游)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갔으나 이 날 이후로 시름시름 앓아눕기 시작하더니 결국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일흔 다섯 살이 된 육유가 다시 심원을 찾아왔건만, 
이제는 많이 변했고, 그 옛날 벽에 써놓았던 자신의 시도 이제는 희미해져 잘 보이지도 않았지요. 
서글픈 마음으로 그녀와의 옛 추억을 회상하다가 몹시 마음이 아파진 그는 다시 붓을 들어 詩를 짓게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심원(沈園)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