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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무비스님의 直指〈43〉제27조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 -남인도서 보리달마에게 법 전해

시치 2009. 12. 10. 16:32

남인도서 보리달마에게 법 전해

〈43〉제27조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


第二十七祖 般若多羅 旣得法已 行化 至南印度 彼王香至 請祖宮中 尊重供養 施無價寶珠 王有三子 其季開士也 尊者欲試其所得 乃以所施珠 問三王子曰此珠 圓明 有能及此不 二子皆曰此珠 七寶中尊 固無踰也 非尊者道力 孰能受之 第三子菩提多羅曰此是世寶 未足爲上 於諸寶! 法寶爲上 此是世光 未足爲上 於諸光中 智光爲上 此是世明 未足爲上 於諸明中 心明爲上 此珠光明 不能自照 要假智光 乃辨於此 旣辨此已 卽知是珠 卽知是 卽明其寶 然則師有其道 其寶自現 衆生有道 心寶自現! 尊者 歎其辯慧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457) 존자가 이미 법을 얻은 뒤에 교화를 펴다가 남인도에 이르니 그 나라의 향지왕(香至王)이 궁중으로 청하여 존중하고 공양하며 무가보주로써 보시하였다. 왕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막내아들은 보살이었다. 반야다라 존자가 그들의 안목을 시험하려고 보시를 받은 무가보주로써 세 왕자에게 물었다. “이 구슬이 둥글고 밝으니 무엇이 능히 이것에 미칠만한 것이 있겠는가?”

두 왕자들이 같이 말하기를, “이 구슬은 7보 가운데 으뜸이니 진실로 이것을 능가할 것이 없습니다. 존자님의 도력이 아니면 누가 능히 받아 가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셋째 왕자인 보리다라(菩提多羅)가 말하였다.

“이것은 세간의 보배이니 족히 훌륭한 것이 못되고 모든 보배 가운데 법보(法寶)가 으뜸이 됩니다. 또 이것은 세간의 빛이니 족히 훌륭한 빛이 못되고 모든 광명 가운데 지혜의 광명이 으뜸이 됩니다. 또 이것은 세간의 밝음이니 족히 훌륭한 것이 못되고 모든 밝음 가운데 마음의 밝음이 으뜸이 됩니다. 이 구슬의 광명은 능히 스스로를 비추지 못하고 요컨대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 이에 이것을 분별할 수 있으니 이미 이것을 분별한 다음에 곧 이것이 구슬인줄 압니다. 이미 이것이 구슬인줄 알아야 곧 그것이 보물인줄을 압니다. 그렇다면 스승님에게 그 도가 있으므로 그 보물이 저절로 드러나고 중생에게 도가 있으면 마음의 보배가 나타납니다.”

반야다라 존자가 그의 변재와 지혜를 감탄하였다.

 

 보물도 소중하지만 알 수 있는

‘마음의 지혜’가 소중하고 값져

 

해설 : 반야다라 존자가 법을 받고 교화를 펴다가 남인도에 이르러 매우 뛰어난 사람을 만나 법을 전하게 되는데 그가 불교역사상 석가세존에 버금가는 동토초조(東土初祖) 보리달마(菩提達磨, ?~528)였다. 달마대사를 흔히 일컫기를 남인도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하는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눈 대화도 다른 형들의 말과는 특별히 달랐다. 그래서 반야다라 존자는 그를 첫 눈에 법의 그릇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세간의 보배와 법의 보배, 세간의 광명과 지혜의 광명, 세간의 밝음과 마음의 밝음을 명석하게 설명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보배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는 훌륭한 줄을 모르고 다만 지혜의 광명을 빌려야만 능히 그것이 훌륭한 보배인줄을 안다는 말은 만고에 명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궁극적 가치는 보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보배를 알아볼 줄 아는 지혜가 궁극적 보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반야다라 존자에게 도가 있으므로 보리다라의 그릇됨을 알아보듯이, 사람 사람에게 도가 있으므로 마음의 보배가 나타나며 그 마음의 보배를 십분 활용하여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동굴 속에 보물이 가득히 있을 경우 동굴을 밝히는 등불이 있으므로 해서 보물을 알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취하여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만약 등불이 없다면 보물을 알아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취하여 활용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물도 소중하지만 그 보물을 알아보는 마음의 지혜가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에서 보리달마는 뒷날 동토인 중국으로 건너와서 기존의 이론에만 치우친 불교를 배격하고 모든 법의 근본인 이 한 마음을 중요시하는 가르침을 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론(觀心論)에서 마음을 관조하는 한 가지 방법이 육바라밀 등 온갖 수행을 다 포함하고 있다(觀心一法 總攝諸行)고 하였던 것이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文殊法供養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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